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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sketch 005 - 내가 어릴 때 죽는 걸 되게 무서워했거든. 아니, 지금도 물론 무섭긴 하지만. 그런데 사람이 죽는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여섯 살 때 쯤인데, 그때 내가 이집트에 관한 책을 읽었어. 거기 나와있길, 고대 이집트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서 죽어서도 영원히 살 수 있게 했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한테 사람이 죽는 게 뭐냐고 물어봤고, 뭔지 알고 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너무 무서워져서 엄마한테 나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달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돌아가서 커튼 뒤에 숨어 있었어. "커튼 뒤에? 왜?" - 몰라, 그냥 너무 무서워서? 그러고 한 5분 있다가 다 까먹고 또 놀았지 뭐. 그러다가 초등학교에 가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은 또 신.. 더보기
sketch 004 "야,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사람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누구랑 같이 못 있어서 외로운 거야." - 음. "깨달았다니까?" - 똑같은 거잖아. 말만 다르게 했네. "아냐, 달라. 누구랑 사귀거나 서로 좋아하거나 하면 오히려 더 외로움을 타는 거지. 그러기 전에는 누구랑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하니까 외롭다는 느낌 자체가 애초에 없잖아? 그런데 누구랑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는 거지." - 그런가. "그리고 난 막 바쁠 땐 별로 그런 생각 안 들다가, 시간이 남으면 더 외로워지는 것 같아." - 그건 마음에 빈틈이 생기니까 거기에 그리움이 들어차서 그러는 거야. "그렇겠지." - 그런데 니 말이 맞다면, 외로움은 그리움에서 기인하는 걸까? "응." 더보기
2008년 10월 4일 토요일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sketch 003 When I was young, I loved to play all this fast and crazy stuff for my band's gig, to test how far I could go, you know. There was this beautiful girl in the band and one day, after our gig, she said, "Honey, there's something I want to talk to you about." So I said, "Yes, what is it, baby?" Then she said, "For our gig, you always go too fast, honey. There's no need to be in a hurry. You need to.. 더보기
72.07비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melodic penetration 001 "The skies are falling down, but the stars suit you well." Do you still remember when we were little? We were playing in the park and you asked me what happens when you die. I said, "You forget everything." Everything. "Even you?" you asked. "Yes, even me." You did not want to die. Never forget. The remains of what we used to have were taken away with the softest squeeze. How did I forget? How... 더보기
sketch 002 - I sometimes think that I have too much faith in humanity. "Faith in humanity? Come on." - What's wrong with that? "How old are you, Chloe, eight?" - I mean, it doens't hurt to have faith in humanity... does it? "Pssh. Fuck that. Fuck humanity." - You're being too pessimistic. "No. I'm rather being realistic. If humanity is something we can have faith in, then why would communism fail?" - My fr.. 더보기
sketch 001 - I can't believe I'm becoming a junior. And yeah, you're graduating. "I know, time flies by." - You should watch "The Graduate." "You mean the one with Dustin Hoffman?" - Yes. My brother watched it after his graduation too. Well, a bit irrelevant though. "Haha, but I'm pretty sure that I won't have an affair with a married woman." - Who knows? I bet Dustin Hoffman didn't expect it either. "Haha.. 더보기
72.06비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72.05비트 생각해보면 지난 여름 문득 무작정 누군가와 결혼하고 싶었던 건 그래, 새로운 출발이니 뭐니를 그리워해서도 맞았지만 그러면 절반 정도만 맞았고. 무엇보다도, 내 옆에 누군가의 진심이 무조건적으로 머무르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커서였던 것 같다. (이상적인 방정식이기 때문에 세상의 많은 결혼이 실패로 끝나고 이혼으로 결론짓는다는 사실은 배제했다.) 그 진심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시간에 휩쓸려 모양이 바뀌고 색이 바래더라도, 결혼이라는 제도로 너와 나의 마음을 묶어 놓으면 너는 어쩔 수 없이나마 나에게 얽매여 내 옆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겁하고 치졸한 생각. 더욱 슬프게도, 그때의 내 동기는 굳이 사랑에 목말랐다거나 설레는 감정이 고팠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혼자 있기 싫어서. 그 이유 하나뿐.. 더보기
청춘08 ( ) 때에는 ( ) 대해 싫어하거나 ( ) 보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요즘 내가 나에 대해 ( ) 조언할 때에는 나 자신에게 ( ) 해 주는 것 같다. 이런저런 ( ) 남에게 투영된 ( ) 하면 될까. 그래서 ( ) 항상 마음( ) 않다. 다은아, 너는 이런 ( )? 이런 말을 하면서 너는 ( ) 않은 거니, 정말로. ( ) 비로소 남에게 ( ) 되는 것이 아닐까. ( )가 나에게 고민을 얘기할 때 그리고 내가 ( ) 해 줄때, 나는 다소 ( ). 상대방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맨 처음에 뭐라고 썼는지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더보기
청춘07 어제 겨우 첫 끼니를 때운 늦저녁에조차 살짝 토증이 일었던 건 단순히 내가 낮에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멀미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찬 밤공기는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요 며칠 시카고가 비정상적으로 추웠기 때문보다는 세인트루이스가 어제 낮 비정상적으로 더웠기 때문인지. 추우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을 때(하지만 시릴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아) 누군가가 나더러 그것보다는 날이 추울 때 목도리랑 코트에 꽁꽁 싸여 있는 게 좋다고 하는게 더 맞을 것 같은데, 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새벽에는 오랜만에 무서울 정도로 가위에 두 번 정도 눌렸다. 경험상 가위에 눌렸을 때는 잠을 완전히 깬 다음에 다시 자야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괜히 억지로 일어나 가만히 앉아 있다가,.. 더보기
청춘06 "시간을 보내라면 우리 방 애들이랑 더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감은 너랑 더 잘 가." 별 뜻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 말에 위안받았다고 말하면 조금 우스울 것 같긴 하지만, 늦었던 그 시간에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생각했던 건 내가 몇 년 전에 다른 사람에게서 비슷한 걸 느꼈기 때문인지, 아니면 비로소 나와 그 애 사이의 소통이 더욱 견고해졌기 때문인지. 그 애는 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솟던 의심을 단숨에 불식시키는 말이었던건지. 그러고 보니 지난 달이었나, 그 애랑 저녁을 먹고 돌아오던 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트라우마가 커서 아직까지도 상기하기 힘든 이야기를 꺼냈다. 혀가 굳는 것 같아 힘을 들여 말해야 하는 그런 이야기. 딱.. 더보기
72.04비트 "그러니까, 어떤 거냐면... 이런 비유를 들면 좀 맞을까. 하얀 캔버스를 봤는데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들어서 사기는 샀는데 막상 집에 캔버스를 들고 와서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까 연필을 댈 수 없는 기분인거야. 여차해서 연필선 하나만 잘못 그려도 캔버스를 다 망쳐버릴 것 같아서 시작하기도 싫은거지. 정말 우유부단하고 겁쟁이 같지만, 그런 기분이야." "걱정이 많구나." 모든 일에서 완벽할 필요는 딱히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 했다. 아침 일찍 간 카페는 내가 모르던 아침의 활기가 넘쳤고 주위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은 너무 느긋해 보였다. 대체 뭐라고 말해줘야 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리를 바꿔 꼬았다. 주위에서 커피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나는 계속 생각을 했다. 생각만 했다. "그래서 걔는, .. 더보기
가장 솔직한 노래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72.03비트 나는 내가 사랑스럽지 못한 애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쌓아놓는 자기 방어 기제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더 견고할지도 모르지만 이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못하겠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다. 바라고도 바랄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크나큰 상실감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 몸으로 학습해서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항상 낮게 둔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그냥 몸에 배였다.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내가 널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야. 가끔은 나도 이런 내가 몹시 떫다. 하지만 나라도 나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못 하(게 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업보다. 점심을 먹고 공부하려고 도서관에 왔는데 이래저래 자꾸만 딴 생각.. 더보기
청춘0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너에게 했던 말들 중에서 사실이 아니었던 부분은 단 한 가지도 없었어.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 and he said I was 난 너무 insecure해. - 넌 항상 insecure해. 진짜? - 아니야? 모르겠어서 물어보는 거야. - 널 보면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 근데 나쁜 것만은 아니야. 나쁜 것 같은데.. - 니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한거야. 낮에 한 잔 저녁에 한 잔, 쓸데 없는 아메리카노 두 잔에 졸음이 가시기는 커녕 토증이 살짝 몰려왔고 프리메드 학생들이 대거 보는 물리 시험 때문에 사람 대신 에어컨 바람이 가득한 도서관에서 난 끝도 없이 손이 시렸고 너는 며칠 째 보이지도 않고 오늘 나한테 일어났던 딱 하나 좋았던 일은 오랜만에 빌리지에 가서 저녁으로 새우를 넣은 데리야끼 stir fry를 먹었다는 거야. 내일이면 벌써 금요일이고 시간은 막을 길 없이 흐르는데 난 무얼 해야 좋지? 도서관에선 몇 시간 동안 집중 .. 더보기
청춘04 C가 쿠키 하나를 사 주며 괜찮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괜찮지 않다고 했다. 괜찮지 않아. 안 괜찮아. 왜 그러냐고 묻길래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솔직했었다. 내가 만약 근본적인 원인을 알았더라면 이러지 않는다. C의 염려 어린 시선이 버거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C가 라이스 크리스피 하나를 다 끝내고도 한참이 지날때까지 나는 속이 울렁거려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쿠키를 다 먹지도 못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나는 체했다. 나는 C가 몇 개월 전 쯤 나에게 했던 말들을 어제 C에게 똑같이 내 입으로 뱉어냈다. 모순이다, 하지만 C는 내가 그때 했던 말들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C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의미하는걸까? C도 몇 달 전 그때,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기를 바랬.. 더보기
72.02비트 너의 기억은 언제나와 같이 '불현듯'이다. 뜸한 주기로 반복되는 그 일상(이라면 일상)에 나는 이제 더이상 놀라지도 의아해하지도 않는다. 슬퍼하지도 못 한다.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다. 내가 어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침대에 누워 생각한 것은 어째서 너는 나에게서 절대 눈물로 솟아나는 법이 없는가였다. 중요한 순간마다 너는 내 온몸의 세포를 잠식할 뿐 내게 슬퍼할 수 있는 일말의 권리도 허락하지 않는다. 2년 전 그때도 난 울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 몫의 울음까지 토해냈다. 전화기 너머 희미하게, 하지만 모순적으로 한 음 한 음 정확하게 들리던 네 흐느낌 앞에서 나는 울 수도 없었다. 내가 세상에 나와 아마도 처음 한 일이 우는 것이었을텐데 나는 그 기본적인 .. 더보기
72.01비트 쿨럭쿨럭 나는 간헐적으로 기침을 했고 너는 웃으며 배가 아프다고 했다. 나는 끓인 물을 마셨고 너는 커피를 마셨다. 마주 보는 것과 같은 방향을 보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선뜻 말하기 힘들다. 신기하게도 여전히 시선은 이따금 마주친다. 너는 내가 너를 본의 아니게 무안하게 한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까? 그러고 보면 '본의 아니게'라는 말은 참으로 자기 방어적이고 도피의 분위기가 강한 표현이다. 굳이 변명하자면 너만큼 나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얼굴이 빨개졌다고 들었다. 난처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눈치채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섬세하지 않아서 걔처럼 니 안경이 바뀌었는지 그대로인지도 알지 못 해. 그래서 내심 분했다. "Is she okay?" I asked. He hesitated.. 더보기
청춘03 난 순간 나 혼자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말을 맺었다. 너는 말을 멈춘지 오래였고 정적만 곧고 길게 이어졌다. 왠지 깨면 안 될 것 같은 정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지 못 했다. - 지금 난 이미 기숙사에 도착했지만 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로비 쇼파에 앉아 있다는 것 - 방으로 가서 내일 있을 컴싸 퀴즈 공부를 해야하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다는 것 - 그래도 결국은 하게 되리라는 것 - 옆에서 우리 층 남자애가 잔뜩 몰입한 채로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지만 난 그게 달갑지 않다는 것 - 너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수도 없이 많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 -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대강 + 현재 내가 짊어진 나에 대한 타인(들)의 숱한 기대에 부합하지 못 하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