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장 보통의 존재

72.03비트


나는 내가 사랑스럽지 못한 애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내가 쌓아놓는 자기 방어 기제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더 견고할지도 모르지만 이걸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못하겠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겠다. 바라고도 바랄 수 없다는 것은 결국 크나큰 상실감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 몸으로 학습해서 숙지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마음을 항상 낮게 둔다, 그러다보니 그것이 그냥 몸에 배였다. 눈을 맞추지 못하는 것도 내가 널 싫어하거나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야. 가끔은 나도 이런 내가 몹시 떫다. 하지만 나라도 나를 살아내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못 하(게 되)리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업보다.

점심을 먹고 공부하려고 도서관에 왔는데 이래저래 자꾸만 딴 생각이 드는 이유는 오늘 날씨는 근래 들어 최고라서? 아무래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아서 지하 1층 책꽂이를 뒤져 Ian McEwan의 단편집을 꺼내들었다. First Love, Last Rites. 원래는 기분도 그렇고 해서 Atonement를 다시 읽으려고 했는데 전에 친구가 자기 블로그(였던지 싸이였던지)에 이 사람 단편집이 마음에 들었다고 쓴 걸 본 기억이 있어서. 사서는 책을 받아들고 바코드를 찍어주면서 8월 14일까지 반납하라고 말했다. 여름학기가 끝난 다음 날이다. 마음이 허전해지기 시작하겠지.

아니. 꼭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지금으로부터 한 10일 정도만 지나면, 어느 정도 허전한 기분이 들 것 같다고 생각해. 작년 영화잡지에서 읽은 칼럼에도 적혀있었던 것처럼, 이 여름이 쨍- 하는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나서야 나는 마음 한 켠을 채우는 서늘한 허전함에 자연스럽게도 이 더위를 그리워하게 될거야. 책을 반납하면서 "이 여름도 지났어"라고 소리내어 말하는 순간 내 마음도 쨍- 할 것 같아.

(여름이 지나도 우리는 지금과 같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런 모습으로 머물러 있기라도 할까? 아니면 당연히, 후퇴하려나? 우리는 그저, 들춰봐야 겨우 기억날 2009년 여름의 한 그림으로 남을까?)

밖에서 광합성 좀 하면서 한 챕터 정도 읽고 갤러리아 가서 영화 표 끊고 공부해야지. 오늘은 바람이 아주 좋다. 언젠가 올 초가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