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심사 중인 논문 하나가 있는데 거기에 들어갈 이러저러한 데이터 좀 찾아서 넘겨줄 수 있겠녜서, 마침 점심 세미나 가기 직전이라 거기에 다녀와서 자료 찾아 보겠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대답하자마자 그 데이터가 폴더 어디에 숨어 있는지 기억이 났다. 공용 컴퓨터로 재빨리 파워포인트 파일을 찾아 이메일로 보내주었는데, 찾고 보니 파일이 거의 삼 년 전의 것이었다. 세미나 내내, 프로젝터가 쏘아대는 화면을 다소 아득한 기분으로 마주 바라보며 앉아 있다가


잠깐 숨을 쉬어 봅시다, 지금 당신의 상태는 어떤가요?


자꾸 이런 식으로 현상現象에만 치중해서 어떡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질책인가? 결국에는 그 중요성에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인데, 아니 다들 현상만을 가지고 다투는 상황에서 나더러 뭘 어쩌라고요? 더 나은 수가 있기라도 한가요? 그렇게 항변하다가도, 기껏 인쇄한 종이더미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돌아서며 생각해보면 나는 결국, 아주 예전부터 늘, 그 주체가 무엇이 됐든 현상의 굴곡에 예민해했다. 그러니까 그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고된 것도 새롭지 않지. 지난 달부터 쓰기 시작한 마인드풀 앱은 하루에 여러 번 푸쉬 알람을 보내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숨을 쉬어 봅시다, 지금 당신의 상태는 어떤가요? 괜히 이런 걸 물어온다. 이것도 질책인가?


지금 당신의 상태? 나는 파이펫팅을 하다가, 골치 아픈 이메일에 답장을 하며 손톱을 뜯다가, 창가에 서서 멍하니 커피를 마시다가,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 화면 너머를 응시하다가, 내 지금現의 상태象/狀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다 기분이 나빠진다. 이유는 알 수는 없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건 알 수 있다. 학부 시절 용돈을 벌어 보겠다고 이따금 참가한 심리학 실험에서, 피실험자의 컨디션을 파악하기 위해 1부터 10까지의 스케일로 본인의 현재 피로도, 행복감, 각성상태 등을 자가진단하라고 내게 물어왔을 때와 비슷한 경로로 기분이 나빠지고, 나는 그 현상에 홀로 골몰해지고 내가 이렇게 울며 눈 비비는 걸 내 앞의 차를 모는 사람은 백미러로 구경하며 놀랄까? 미친 여자라고 생각할까? 아니 내가 보이기는 할까? 그런 것들을 궁금해하며


적어도 확실한 것에만 입술을 떼고 발성을 하는 나를 칭찬한다. 딱히 이렇다할 반성도 없이, 나는 나의 기분을 현상現像해내는 데에 제일 집중한다. 어차피 불을 껐지만 불 끈 김에 눈도 감고 어둠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면 기계에서 밀려나온 필름이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나는 안도에 가까운 기분을 느끼며 필름을 집어든다. 어째서냐니, 설명하자면, 그 누구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이라도 나는 그냥 정말 알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야말로 여름의 한복판이고, 그러니까 나라도 나를 의심해선 안 된다.



+ chaz bundick meets the mattson 2 - a sea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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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loed 트랙백 0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