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장 보통의 존재

청춘04


C가 쿠키 하나를 사 주며 괜찮냐고 물었다. 솔직하게, 괜찮지 않다고 했다. 괜찮지 않아. 안 괜찮아. 왜 그러냐고 묻길래 모르겠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솔직했었다. 내가 만약 근본적인 원인을 알았더라면 이러지 않는다. C의 염려 어린 시선이 버거워서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C가 라이스 크리스피 하나를 다 끝내고도 한참이 지날때까지 나는 속이 울렁거려서 손바닥보다도 작은 쿠키를 다 먹지도 못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나는 체했다.

나는 C가 몇 개월 전 쯤 나에게 했던 말들을 어제 C에게 똑같이 내 입으로 뱉어냈다. 모순이다, 하지만 C는 내가 그때 했던 말들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C에게도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걸 의미하는걸까? C도 몇 달 전 그때, 내가 침묵으로 일관하기를 바랬을까? 다만 내가 '반려자'라는 단어가 참 예쁘게 느껴진다고 말했을 때 C는, 예뻐? 하고 되묻더니 조금 웃었다. -내 여행의 절반을 당신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잖아.- -하하, 그런가.- 동의하지 않아서 나오는 웃음일 가능성이 농후해. 설득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면 C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의존을 믿지 않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C에게서 P의 어떤 면들을 본다. C와 P는 객관적으로 너무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드물게 겹쳐보인다. P는 언젠가, 사람은 각자 추위를 견디어 내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들은 서로를 절대 온전히 위로해낼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서로를 생각한다는 그 진심만은 건재하잖아? 라고 내가 항변해도 P는 마음을 바꾸지 않으려 들었다.

혹은, C와 P가 비슷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C를 대할 때의 태도가 P를 대하던 때의 태도와 비슷한 기분도 든다. 아직 낱낱히 알지 못 하면서 완벽하게 솔직해지는 자세. 물론 아직 C에게는 그만큼 맹목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삶은 이론보다 풍부하고 욕망은 분석보다 실천적이다, 라고 P가 말했다. 혹은 P가 자기 친구의 말을 인용했거나. 난 '삶'에 대해서는 항상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욕망'에 대해서는 그다지 별 의식이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새로운 사실을 학습한 기분이 들었다. C도 나에게 욕망에 관한 부분을 다시 묻더니 좋은 말이야, 라고 했다. 응, 맞아. 의지가 되는 말이지. 그래서 나는 분석보다 실천적인 욕망에 기반하여 이론보다 풍부한 삶을 살고 싶어. 살아야 해. 살아야 하는데.

발이 시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