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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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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떤 거냐면... 이런 비유를 들면 좀 맞을까. 하얀 캔버스를 봤는데 너무 예뻐서, 마음에 들어서 사기는 샀는데 막상 집에 캔버스를 들고 와서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까 연필을 댈 수 없는 기분인거야. 여차해서 연필선 하나만 잘못 그려도 캔버스를 다 망쳐버릴 것 같아서 시작하기도 싫은거지. 정말 우유부단하고 겁쟁이 같지만, 그런 기분이야."

"걱정이 많구나."

모든 일에서 완벽할 필요는 딱히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진 못 했다. 아침 일찍 간 카페는 내가 모르던 아침의 활기가 넘쳤고 주위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은 너무 느긋해 보였다. 대체 뭐라고 말해줘야 하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리를 바꿔 꼬았다. 주위에서 커피 냄새가 진동을 했고 나는 계속 생각을 했다. 생각만 했다.

"그래서 걔는, 어때? 잘 지내?"

"음... 잘 지내긴."

"아,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째서 두 명 모두, 각자 괜찮은 건 하나도 없으면서 상대방은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야 충분히 가지만 왠지 개인적으로 기시감이 들어서 이해하기 싫었다고 해야 더 맞을 거다.

"요즘에 내가 눈 앞에 그릴 수 있는 걔의 상황은 대충 이래. 말도 못 하게 어질러진 방 가운데에 앉아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가 와서 방 정리 좀 하라고 압력을 넣기 시작하는거야. 그런데 방이 너무 어지러워서, 뭐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워야 할지 몰라서 넋 놓고 그 자세 그대로 주위만 돌아보고 있는 그런 모습. 딱히 묘사해보자면, 아마도 이 풍경이랑 비슷할 것 같아. 내가 정확히 파악하긴 하고 말하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

돌아오는 먹먹한 표정.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참, 뭘까. 나는 뭘 또 잘못한거지?"

"또 그런다? 잘못한 거 없어. 나 괜한 거 말해준 것 같잖아."

"있잖아, 나는 내가 그렇게 말하면 모든게 차근차근 다 정리될 줄 알았어. 걔도 괜찮을거라고, 아니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고. 그 이후로 걔를 제대로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시간을 좀 줘. 둘 다, 조급해하지마."

그리고 사람 일은 몰라, 그러니까 이걸 완전한 끝이라고 생각하지마, 라는 말은 한숨 사이로 밀어넣었다. 그거야말로 괜한 말이 될 것이다. (아니면 단어를 조금 바꿔서 말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말해줄래?"

"응. 그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