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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rd day we met you gave me all your secrets until I held an ocean in a cradle." -- From The Order In Which Things Are Broken by Desirée Alvarez 생일의 첫 자정은 어두운 주유소에서 바람 빠진 타이어에 공기를 넣으며 맞았고, 생일의 끝 자정은 진토닉을 마시며 맞았다. 두 자정의 중간에서, 좋아하는(좋아했던?) 작가가 11년 만에 새로운 소설을 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가 이혼했다는 사실은 기사를 읽다가 늦게나마 알았다. 생일 선물을 뜯는 기분으로 사전 같은 책을 열었다. 책에 따르면, 유대교 속담에는 "행복을 좇다가 만족에서 멀어진다while we pursue happiness we flee from contentment"라는 말이 있단다. 행복과 만족을 구분해 생각한 적이 드물다. 그러나 나는 종종 행복하니? 묻곤 하지만 만족하니? .. 더보기
"그러나 새로 온 여름에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수줍어서 그 어깨를 안아준 적이 없었다" -- 허수경 '레몬' 부분 어느 주말 늦은 저녁 복도 바닥에 앉아 친구에게 받은 초콜렛을 바나나와 함께 저녁 삼아 씹어 먹으며 유리창 밖을 내다보았다. 피곤했고, 집에 가고 싶었다. 무슨 얘기 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문자를 하느라 핸드폰을 만지는데, 화면에 금이 간 부분이 자꾸 손톱에 걸리는 것이, 곧 조각으로 떨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날 낮에 일하는 도중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빠져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에, 작년 연말 처음 금이 갔던 핸드폰 화면이 팔 개월을 버텨주다 드디어 이렇게 산산조각 나버리는구나 한여름에 우박 날리듯 어두운 복도에 파편 날리겠구나 그래 이 정도면 이젠 정말 어쩔 수 없다, 생각하며 화면 귀퉁이에서 바스락거리는 유리 조각을 손톱 뜯듯 잡아뗐는데 덜컹 떨어진 건 핸드폰 화면이 아니라 .. 더보기
"나는 노을을 잔뜩 불러다놓고 / 노을의 바깥을 생각한다" -- 임경섭 '너의 장례' 전문 옴니버스 식으로 살고 있다. 비틀거리며, 하루와 한나절과 한 시간을 통과해 개별의 에피소드에 매듭 짓는다. 허무한 기분으로 문을 닫으며 깨닫는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기억을 괜히 episodic memory일화기억이라고 일컫는 게 아니구나.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모여 나의 터널을 오돌토돌하게 만든다. 주저하면서, 우리가 마치 하나의 에피소드 같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지금 내가 고작 이야기감 밖에 안 된다는 뜻이에요? 당황할 걸 뻔히 알고 해본 말에 그런 게 아니라고 황급히 내젓는 웃음 섞인 손을 보며 나는, 그치만 난 사실 상관 없어요, 이 말을 하는 대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따라 웃었는데, 알갱이 모양의 이야기라도 되는 게 어딘지.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졸업을 .. 더보기
"나도 허공이었던 것을 너만큼 변심으로 내 발등에 엎지를 줄 안다" -- 조연호 '여름' 부분 어쩔 수 없는 기분으로 출근을 하는데, 다리를 건너자 앞의 차들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여럿 있었다.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좌회전 구간을 앞두고 서행을 하며, 들것에 실려나가는 사람의 상체를 보았다. 몇 달 전 같은 구간에서는 누가 죽었다. 그날 저녁 즈음 친구 하나가 단체 메세지를 보냈다. 다리로 향하는 도로에서 어떤 사람이 차에 치여 죽었고 사고를 수습하느라 도로를 막아놨으니, 바닷가 사는 사람들은 유의하라고. 차라리 고속도로를 타고 빙 둘러 바닷가로 가는 편이 나을 거라고. 그건 내가 아직 퇴근하기 한참 전이었고, 나는 저녁 늦게 잔해조차 없는 찻길을 달려 다리를 건너 집으로 가며 생각했다. 왜 죽었을까, 어떻게 그랬을까, 어쩌다. 퇴근 피크 타임에.. 더보기
"내게서 일어난 적 없는 일들이 / 조용히 우거지고 있는 것을 / 보지 못한다" -- 강성은 "환상의 빛" 부분 여러 명이 떠났거나, 떠나고 있다. 느슨하게 알던 동물실 직원이 갑작스레 다른 주州로 이직하는 것으로 시작해 미국에 와서 몇 주 같이 있던 엄마도 귀국했고, 오피스 옆자리 포닥도 일을 정리하고 체코로 돌아갔고, 일 년 넘게 같이 살았던 예전 룸메이트도 내게 가구 두어 개를 주고 떠났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포닥도 다음 주면 캐나다까지 차를 몰고 간다. 빈 자리 어색할 틈도 없이 또 그만큼 여럿이 온다. 여름 인턴을 하려는 학부생들로 건물이 가득해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낯선 얼굴을 보고, 다다음 주면 대학원 신입생들이 캠퍼스 방문차 본부에서 여기로 내려온다. 일찌감치 우리 캠퍼스 소속을 택한 얼굴 말간 신입생은 계단에서 나를 마주칠 때마다 클로이 안녕, 좋은 아침이지, .. 더보기
"Nothing to do but live. Nowhere to be but gone." -- From This Inwardness, This Ice by Christian Wiman from La collectionneuse (1967; dir. Éric Rohmer) 한 주말에는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그 다음 주말에는 수영장에서 헤엄을 쳤다. 물속에 초록 파란 조명이 번갈아 들어와 자꾸만 그 전 주말의 바다 생각이 났다. 거긴 기억보다 물이 더욱 옥색이었다. 그래서 놀랐다고 하자 같이 일하는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그 정도면 거의 캐러비안이니까,라고 했다. 바다라고 다 같은 색일 수가 없는 것이, 물이 더워지면 녹아들어갈 수 있는 산소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에 어쩌구 저쩌구. 자꾸만 남쪽 바다, 더 남쪽 바다, 타령하는 사람에게 뉴욕에도 바다 있잖아,라고 대꾸했다가 들었던 그.. 더보기
"So we preferred to let the centuries flow by as if they were minutes;" -- From "At Daybreak" in The Complete Cosmicomics by Italo Calvino Untitled (Perfect Lovers) by Félix González-Torres 손으로 일기를 쓰다가 노트를 덮고 여기에 쓴다. 최근 들어 예전보다 더 자주 손으로 일기를 썼다. 달려가는 마음 때문에 또박또박 적는 건 쉽지 않고 시간을 활자로 옮긴다고 해서 나의 당장이 길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일기를 쓰는 행위보다도 지난 일기를 읽는 행위가 나에게 깊은 위안된다. 지난 날짜에 묻어 있는 지난 기분, 그들이 그렇게 책등에 묶여 있는 것만으로도 낱장의 스크린 속 텍스트와는 또 다른 단단한 위로다. 활자를 바탕으로 기억을 재연하다 보면 과거의 나를 훔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더보기
"There is no language without deceit." -- From Invisible Cities by Italo Calvino 바다도 없는데 파도처럼 온다. 이해할 수 없지만. 활자를 좋아하다 이렇게 된 걸까. 행간에서 잔뜩 놓쳤다. 자꾸만 상관이 없어진다. 하지만 내가 빠진 서사는 참을 수 없다. 쉬운 마음이고 싶다. 그건 쉽지 않다. 대신 쉽게 괴롭다. -- 위와 같이 써두고 노트북을 덮고 사흘을 쉬었다. 적은 수의 사람들을 길게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고, 혼자 많이 걸었다. 몸에 바람이 자주 들어오고 나갔다. 손톱에 긁혀 올이 나간 스타킹을 보면서 깔깔 웃는데 머리가 가벼워졌다. 우리는 다들 정말 건물인가봐, 자꾸 환기 시켜줘야 하고. 하지만 넌 우리 인생은 건물이 아니라 그림이라고 말했지. 선 위에 다른 선, 색깔 위에 다른 색깔 덧입혀.. 더보기
"A sigh, and Earth continued to rotate back toward the sun." -- From When Breath Becomes Air by Paul Kalanithi from Claire's Knee (1970; dir. Éric Rohmer)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번 달 들어 아직 한 편도 보지 않은 건 알겠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면 불안하다. 나의 여기에 안주도 못 하면서 도망갈 기력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쉬고 있어도 쉰다는 기분이 없고, 보충제를 그렇게 먹는데도 입 안이 헐었다. 양치를 하다가 칫솔 머리로 상처를 긁어버려서 더 난장판이다. 구내염 연고를 어디다 뒀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냥 하던대로 양치를 하고 치실질을 하고 리스테린으로 입을 헹군다. 치과에서 권유한 리스테린에는 알콜이 빠져있다. 양치 이후보다는 양치 이전에.. 더보기
"and the season is always next month, a pure but troubled time." -- From Composition by John Ashbery from Persona (1966; dir. Ingmar Bergman)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려고 했는데 보험료가 예상외로 꽤 올랐길래 문의해보니, 최근 이 지역 차 사고가 급증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민하다가, 친구가 들어있는 보험이 커버리지는 더 좋으면서도 가격은 더 싸길래 보험 회사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보험 갱신 안 하려고요, 이미 다른 회사에 싸인을 한 뒤 예전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렇게 얘기했더니, 좀 더 포지션이 높은 듯한 담당자가 전화를 연결 받아 보험 내역을 다시 훑어보자고 수려하게 나를 설득했다. 우리와 함께 하신지 2년이면, 꽤 오래인데요? 그렇게 오래도 아니다. 괜찮다고 세 번을 말해야했다. 혹 마음이 바뀌면.. 더보기
"Every day I woke up and my pillow was all blue." -- From Odd Jobs: Watching by Michael Schulman 윤일이다. 일하면서 날짜를 적다가 윤일이구나, 혼잣말을 했더니 근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던 이가 오늘은 년도를 안 적어도 4년 동안 괜찮겠네, 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웃었다. 웃을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따라 웃었다. 4년 전 이맘 때 입사한 친구가 대리를 달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문자를 보냈다. 내 테두리 바깥 지식이 얕아서, 엄마에게 대리가 지닌 의미를 물었다. 좋은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승진이니 당연히 좋은 것임을 안다. 다만 나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너무 막연한 시간을 그 어떤 기약 없이 허공에 부어야하는 곳에 있다. 초조하지는 않지만 내내 뿌옇다. 마침 오늘 조교수 인터뷰를 하러 온 사람은 현재 직장 .. 더보기
"There is permanent music and temporary music." -- From Time Is a Ghost by Alec Wilkinson 월초에 미네소타 본부로 가서 디펜스를 하고 돌아와 다음 주에 당장 포닥 생활을 시작하러 마이애미로 이사가는 대학원 5년차 친구의 앞날을 기원하러 모인 점심 식사 자리에서 대학원 동기가 대학원을 그만둔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난데없는 소식에 먹다 남은 감자튀김을 가운데에 두고 다들 당황한 시선을 교환했다. 다음 날 아침 내내 현미경에 붙어 있다가 동굴 같은 방에서 드디어 나와 동기가 대학원 사람들에게 돌린 전체 이메일을 읽었다. 전날 웨비나를 보느라 점심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던 동기 한국인 언니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언니 저도 이유는 몰라요. 다른 대학원 친구도 얘 왜 떠나는 .. 더보기
"It was a long time before I realized green lollipops were not made from caterpillars." -- From Tall Tales by Raymond Gaddy by Raymond Gaddy 이사한 집은 낯설진 않지만 그래도 약간 남의 집 같고, 나는 퇴근해서 집에 올 때마다 괜히 구석구석을 기웃거린다. 이사를 하자마자 북쪽에 출장 다녀오느라 충분히 짐 풀 시간을 갖지 못한 바람에 집은 아직도 꽤 어수선하다. 출장은 평소보다 배로 피곤했다. 예전보다 역할이 조금 더 중요했고, 신경 쓸 일 투성이었고, 너무 많이 떠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대체로 좋았던 건 다행. 영하로 떨어지지 않았던 기온은 위안. 같은 프로그램에 인터뷰 온 대학교 후배를 만났고, 퇴근하면 나랑 이따금 같이 영화 보러 다니던 애는 활발하게 호스트 일을 하는 나를 어색해했다. 너무 뻔히 보이게 나를 싫어하던 여자애는 어디서 무.. 더보기
2015 새로운 해가 시작된지 삼 주나 지났는데 그간 너무 바빠, 이미 이만큼 멀어진 2015년을 이제야 되돌아본다. 연초에 핸드폰을 바꿨는데, 제대로 찍지 못했거나 실수로 찍은 사진을 모아두는 사진첩 폴더를 따로 만들었다. '잘못'이라 이름 붙였다. 하는 일이 고되었다. 구문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예상대로 힘들었고, 구문시험 이후의 매일매일은 예상 외로 힘들었다. 과학만으로 힘들면 좋을 텐데, 그게 차라리 축복이라는 걸 깨닫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쓸모 없어지는 기분 때문에 나는 자주 곤란했다. 가을이 제일 힘들었다. 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가을에 힘든 기분이 드는 게 싫었다. 연말이 끝나갈 때까지 날은 좀처럼 추워지지 않아서 가을이 길었고, 기분도 길었다. 영영 추워지지 않을 것 같았.. 더보기
"Asked me how to say tree in Arabic. I didn't tell her. She was sad. I didn't understand." -- From Sleeping Trees by Fady Joudah 약국에 가서 약을 찾고 나오려다 며칠 전 편두통약을 먹고 속이 구멍날 것처럼 아팠던 게 기억나, 대학 다닐 때 친구에게 한 번 얻어 먹어보곤 플라시보라 생각해 내가 돈 주고 이걸 구입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거라 생각했던 텀스를 한 통 사고, 오피스에 쟁여둔 껌이 오늘로 동이 난 게 생각나 껌도 두 통 사고, 토요일에 친구 집에 가져갈 와인도 한 병 샀다. 텀스는 각종 과일맛, 껌은 두 종류의 다른 민트, 와인은 만만한 컵케익 브랜드.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캐쉬어가 계산을 했다. 아이디 보여주세요, 하고 그가 변성기도 안 지난 목소리로 내게 물을 때 카운터 뒤에서 덩치 큰 아저씨가 나와 술 구입 코드를 찍어주었다. 얼마 전 잃어버려.. 더보기
정확한 사랑의 말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It is better to live in a state of impermanence than in one of finality." -- From The Poetics of Space by Gaston Bachelard 요즘은 악몽을 꾸면 주로 일에 관련된 내용이다. 꿈속에서 나는 작업을 망치거나 관계를 망치거나, 한다. 방금 전까지 계단을 미친듯이 뛰어 다니거나 앞뒤 없이 화를 내고 뒤돌아서는 사람을 붙잡으며 난 이제 끝난 걸까, 절망하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이 나고 동향의 방은 환하고 나는 미동 없는 침대에 누워 미간을 구기며 혼란해한다. 아예 토대부터 비현실적인 꿈이라면 재미라도 있을 텐데. 꿈의 영역에까지 일상의 결을 끌어오게 되면 곤란하다. 일상을 살면서도 이게 차라리 꿈이길, 빌게 되는 순간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반 년 정도 적어보았던 꿈일기를 자연스레 관둔 것 또한 그 때문일수도 있다. 놓아두면 줄줄 새어나가 애.. 더보기
"we're too young to be specific" from Me and You and Everyone We Know (2005; dir. Miranda July)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서른 몇 살 이후로는 새로운 음악을 잘 듣지 않고, 기존에 듣던 음악만을 주로 듣는다는 글을 읽었다. 그 이야기를 해줬더니 슬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직전까지, 구체적인 일을 하는 것과 구체적인 것이 되는 일의 분명한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참이였다. 어떻게 하면, 같은 맥락의 행위를 끊임없이 하면서도 그 맥락에 함몰되지 않을 수 있을까. 행위를 통해 입증해보여야 하는 것은 알아. 어차피 해야할 일, 일어날 일. 걱정은 그게 아니야, 아닌 걸 알잖아. 나는 동사動詞가 좋아. 명사名詞가 되고 싶지 않아. 하는 것과 되는 것은 다르니까. 영문법에서 하고 많은 동사들 중 be-동.. 더보기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 조연호 '배교' 부분 한 시간을 덤으로 받은 밤에는 너무 많이 울었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유 없진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피곤했다(는 문장은 쓰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덜 울었는지 머리가 아팠다. 힘든가. 힘들지만. 그만큼 힘든가. 정말 많이 힘들던 때에는 힘 빼세요, 하는 요가 강사의 말에도 요가 매트 위에 울컥 눈물 쏟았다. 지금도 그만큼인가. 모르겠다. 생각하지 않겠다. 하지만 남들도 다 힘드니까,라는 말은 싫다. 남들이 힘든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도 않고, 남들이 안 힘들다고 해서 내가 더 힘든 것도 아니다. 내가 힘든 건 그냥 내가 힘든 것, 그 뿐이다. 힘든 것이 몸에 나타나면 안 된다고, 아프지 말라고. 거울 보듯 말해오는 사람에게는 건강하고 길게 살 거라고 답한다. 왜냐하.. 더보기
"Out beyond ideas of wrongdoing and right-doing, there is a field. I'll meet you there." -- by Mewlana Jalaluddin Rumi 첫날부터 정신이 없었다. 오전 내내 밀린 이메일을 처리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점심을 먹고 랩에 올라가서 벤치에 앉으니 건너편 벤치의 테크니션 아주머니가 휴가 끝나자마자부터 실험하네 클로이, 하셨다. 안 하면 큰일날 것 같은 걸요… 물론 큰일은 나지 않는다. 오후에 잠깐 숨 좀 돌리며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는데 영국으로 간지 얼마 안 되는 친구가 기숙사 전기 스토브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불이 안 들어와서 요리를 못한다며. 사진 속 스토브 버튼을 보면서 이것저것 눌러보라고 일러주자 조금 있다 스토브가 작동한다는 답장이 왔다. 갑자기 짠한 기분이 들었다. 너 재작년 이맘때에는 나한테 죽고 싶다고 문자했는데 이렇게 잘 살아남아 런던 가서 다행이다. 그렇게.. 더보기
"Idle youth, enslaved to everything; by being too sensitive I have wasted my life." -- From Song of the Highest Tower by Arthur Rimbaud 당시에는 세 개의 다른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보니 그냥 비선형 구조의 내러티브를 지닌 하나의 영화였다. 며칠 사이 한강을 여러 번 건너다가 서울에는 참 다리가 많구나, 생각했다. 대학동문회 후에 뒷풀이를 가려고 친구가 모는 차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면서, 술자리가 파한 뒤 다시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잠수교를 통해 이태원으로 돌아가면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자꾸만 한강 위를 지나면서 다리 건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다리가 왜 좋은지, 다리를 건너는 게 왜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좋아. 여기서 저기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게… 원래도 좋아했지만 요즘은 더욱 의식적으로 그렇게.. 더보기
"기원은 내게 잘못된 일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 그렇다면 다행이다" -- 황인찬 '개종' 부분 미네소타는 기대보다는 더웠지만 예상보다는 시원했다. 그냥 조금 따뜻했다는 얘기다. 손목시계를 한 시간 늦추며 올해 초를 생각했다. 미네소타에서 살다가 플로리다로 이사온 친구에게 빌려온 파카를 입고도 추워서 종종걸음치던 한밤을, 양 옆으로 정말 아무것도 없이 들판 뿐인 고속도로를 달리던 새벽을, 일정 중간에 혼자 호텔 방으로 돌아와 커튼을 쳐두고 침대에 누워서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어두운 대낮을. 그 호텔은 미네소타에 출장 갈 때마다 학교가 지정해줘서 묵는 곳으로 방의 공기는 건조한데 침대 시트는 어딘가 묘하게 덜 마른 듯 축축한, 그러면서도 부드럽지도 않고 거친, 별로인 곳이다. 잠에서 깰 때마다 건조해진 코를 킁킁대고 이불 아래서 불편하게 뒤척대다 옆 침대에서 자고 있는 사람.. 더보기
"나는 언제고 너를 만날 것이다. 그것을 의심치 않았으므로 이따금 나는 너를 잊거나 하며 살았다." -- 황정은 부분 *** roman à clef roman film à clef film à clef *** Driving to Orlando is not a big deal any more, you just drive south for a while and then merge onto I-4. Easy breezy just like that. I don't really need GPS either at this point. Plus, I get to drive over St. Johns towards the end of the trip, which is like a bonus. It feels great every single time, almost liberating, like all the othe..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