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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lose my eyes and spiral away from all i've done and seen," 오늘 점심 즈음 잠에서 깨 침대에 누워서 오늘이 일요일인가, 혼란해했는데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니 오늘 말고 내일 바다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그렇다면 오늘은 과연 토요일이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종일 일이 너무 많아 총체적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늦은 낮 일을 대충 다 끝내고 한숨 쉬면서 커피 텀블러를 물에 씻고는 물기를 닦은 젖은 페이퍼 타올 대신 깨끗해진 텀블러를 휴지통에 던져넣음으로써 정신없음의 정점을 찍고 말았다. 몸을 숙이고 휴지통에 팔을 집어 넣어 텀블러를 건져내면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퇴근하고 나서는 학교 이벤트의 일환으로 사람들과 함께 강에서 두 시간 정도 보트를 탔다. 그러면 기분이 느슨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보트에 타자마자 이상할 정도로 갈증이 치밀어서 물 두 병을 연달아 마셨고 .. 더보기
"because you think if you're fearless even death would be impressed," 여름은 좋은 거구나. 내가 여태 살면서 살았던 곳 중 제일 더운 도시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여름은 좋은 계절이라고 읊어본다. 절대 싫기만 한 계절일 줄 알았다. 더워하느니 차라리 추워하는 것이 더 낫다는 지론을 지탱하며 지내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행복해보여서인지 내가 행복해서인지. 바다는 항상 바로 여기에 있다. 상어가 해변가로 몰려올 수 있는 해질 무렵 및 새벽만 빼고는 언제든 물장구를 칠 수 있다. 날이 더우니 사람들은 툭하면 모여 논다. 모래사장에는 음악을 틀어두고 건강한 얼굴로 온갖 운동과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해변 의자를 가져다두고 바다를 바라보며 남부 도시답게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그들 뒤로는 거북이 알 둥지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있다. 그게 즐거운 건 맞다. 하지만 나.. 더보기
sketch 011 어쩌면 그럴 수도 더보기
"our heads were reeling with the glitter of possibilities, contingencies," 박사 1년차가 끝났다. 어제는 내가 공식적으로 박사과정을 시작한지 일 년이었다. 짧은 방학 중이다,만 말만 방학이라 수업은 없어도 실험실은 나간다,만 휴가도 조금씩 내고 마음도 조금은 수월하다. 나태한 걸수도 있다, 이것은 아마도 나에 대한 나의 관대함이 도를 넘고 있기 때문이다(이 일련의 의심은 어느 정도 비밀이었는데 여기에 써버렸다). 한여름으로 치닫기 직전이니 이 수준의 느슨함은 조금은 괜찮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뉴욕에 다녀오면 꼼짝도 못하게 박사 2년차가 될텐데 지난 일 년간 나는 뭘 배웠지, 무슨 데이터를 뽑았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자괴감도 들고 부끄럽기도 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냥 이런 사람이 되었다,고 치기로 했다. 다만, 작년에 나와 같이 면접을 봤다가 불합격했던 학생이 다시 .. 더보기
지나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지나는 것에 지나치지 않는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거라면 생각대로라도 되어야 할텐데 대부분의 경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내 마음은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관둔다손 치더라도 내 생각에 틀림이 있다고 해석이 되어버리면 견딜 수 없다. 재차 곤란하다. 오늘 신경질환 세미나 주제는 만성통증chronic pain이었는데 평소 잘 모르던 분야라서, 오늘 하루 종일 머리가 먹먹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의를 기울여 재미있게 들었다. 고통suffering 혹은 "사회적 통증social pain"을 신체적 통증physical pain과 구분하는 지점이 흥미로웠는데 전자와 후자의 경우 모두 비슷한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고 했다. 통증은 어쨌거나 통증인 것이다. 인풋이 없어도 아플 수 있고(만성통증), 없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아플.. 더보기
"it's hard to forget what we haven't done yet," 얼마 전 집 근처 영화관에서 Jodorowsky's Dune(조도로프스키의 듄)의 마지막 상영을 보았다. 다큐멘터리는 조도로프스키가 센 남미 억양으로 말하는 "인생의 목표란 뭘까, 네 자신의 영혼을 만드는 일이겠다What is the goal in life? It's to create yourself a soul."와 같은 문장들로 시작했는데, 인터뷰에서 조도로프스키는 방대한 길이의 소설 Dune듄을 영화화한다는 건 어떤 작업이었는지에 대해 열띤 설명을 했다. 소설은 텍스트 즉 다분히 청각적auditory이고 영화는 시각적visual이다, 나는 원작자가 소설에 부려놓은 청각적인 활자들을 내 상상으로 빚어 시각적인 요소들로 재탄생시켜야 했다, 따라서 활자를 영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은 감각을 전환하는 일이었.. 더보기
sketch 010 "누나, 나도 요즘 만나는 애 생겼는데." - 오! 축하해. 잘 됐네, 우리 학교 애야? "응. 아니. 음, 우리 학교 의대 다녀. 나보다 한 살 많으니까 누나랑 동갑. 그러고보니 연상 만나는 건 처음이네... 몇 달 전에 친구 집 파티 가서 처음 만났는데 그 뒤로도 몇 번 더 만나다가, 이렇게 됐어. 좋아. 재밌고, 똑똑하고, 나처럼 춤도 좋아하고, 키도 커. 170 cm 좀 넘는? 멋있는 여자야." - 와, 너네 둘이 나란히 서있으면 장난 아니겠다." "하하...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지 자꾸 혼자서 생각이 많아져." - 어떤? "누나도 알다시피 나 대학 다니면서 중간에 길게 쉬는 법 없이 계속 연애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사실 얘가 날 먼저 좋아해서 만나게 된 건데, 그런 적은 거의 처음인데.. 더보기
그것은 일종의 간격 때문인데 역설적으로 이것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로드트립을 시작한 날 새벽에는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왔고, 고속도로는 제설차가 새벽 내내 열심히 밀어준 덕분에 나름 깨끗한 편이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완벽하게 설국이었다. 눈길 운전은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고, 와이퍼고 뭐고 차의 온갖 부분이 얼어있어서 처음에는 잔뜩 겁을 먹은 채로 운전하다가 눈을 두른 사방이 예뻤던 덕에 이내 긴장을 풀고 라디오를 들으며 기분좋게 차를 몰았다. 내가 아닌 다른 차들은 아주 드물게 보였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온 세상이 내것 같았다. '순전하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순전함'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순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눈에 반사되는 햇빛에 눈이 부셔와서 선글라스를 꼈다. 미네소타와 아이오와 경계선까지의 길은 너무 아름다웠고, 그래서 너무 행복했는데, 주유를 하려고 아이.. 더보기
내가 원하는 답은 종종 단 하나도 없었다, 많은 시간은 지나고 보면 항상 짧고 매우 예전 같다. 분리라는 건 그렇다. 며칠에 걸친 운전 끝에 미네소타에서 플로리다로 사고 없이 내려오고 이후 곧 이사를 했다. 나는 빈 집에 몇 가지 가구를 들이고, 부엌을 식기구와 조리도구로 채우고, 침구류를 사러 돌아다녔다. 나와 함께 한 달 정도 머무실 요량으로 한국에서 오신 엄마가 많이 도와주신 덕에 집 정리는 예상보다 수월했다. 나는 정식으로 합류한 실험실에서의 일을 계속 진행하면서 기말고사 하나로 겨울학기를 어렵지 않게 마무리하고, 예년보다 빨랐던 박사자격필기시험을 치루어내고, 여차저차 통과했다. 고작 며칠의 텀을 두고 봄학기가 시작되었고, 날이 본격적으로 더워지기 시작했고, 엄마가 귀국하시기 직전의 주말에 엄마를 모시고 올랜도와 세인트 어거스틴에 다녀왔다.. 더보기
sketch 009 “노력도 많이 해봤는데 걔랑은 그냥, 말이 잘 안 통해. 대화가 안 이어져.” - 그래도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다고 단정짓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너한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물론. 아니, 내가 지금 걔가 이상하거나 뭐 나쁘다거나,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고... 쉽게 말해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인 거지. 이야기가 안 통한다니까? 둘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하나 늘 생각해야하고, 그러다보니 대화가 자꾸 끊어지고, 힘들어.” - 그 사람이랑만 그런 거야? 예를 들어서... 나랑은? 나랑은 얘기가 잘 통해? “Effortlessly.” 더보기
며칠에 걸쳐 쓴 일기를 며칠 후 읽다 보면 종국에는 멀미가 난다, 2월마다 2월이 싫었다. 그런지 오래 되었다. 꼬리가 잘린 것 같은 달력 모양도 어색했고 4년마다 하루가 더 생기는 것도 이상했다. 어릴 때는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 그 어중간한 몇 주를 이해할 수 없었고 머리가 조금 더 크고 나서는 많은 2월에 싸우거나, 헤어지거나, 버려지거나, 했다. 2월마다 좋은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나쁜 일이 많았다. 매해 더욱 새롭게 2월을 싫어했다. 일 년 중 제일 짧은 달에 나는 제일 길게 괴로웠다. 이번에도 어림없었다. 불안이 농축된 2월이었다. 그건 원서 결과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작년 2월과는 또 다른 불안이었는데, 얽혀있는 사정이 많기도 했거니와 어떻게 정확히 형언할 수도 없는 질감이어서 나는 종종 입을 다물며 외로워했다. 대학원 마지막 로테이션을 끝낸 2월 마지막.. 더보기
sketch 008-2 https://medium.com/science-scientist-and-society-korean/e9dfe744eb4b http://www.nature.com/naturejobs/science/articles/10.1038/nj7448-277a (원문) "링크된 글, 재밌지?" - 응. 찔리네... "어떤 분야든 깊게 파고들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인 것 같아." -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음과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이론조차 불가항력적으로 다른 이론에 의해 교체될 수 있음'이라는 이 말 이거, 진짜야. 비슷하게, 최재천 교수가 쓴 글 있었는데. 과학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활동이라고. http://m.chosun.com/article.html?contid=2012061802163&sname.. 더보기
sketch 008 "My interest in architectural history is in constantly reconstructing and reinventing it as a language. To me, the most convincing parallel is with poetry, because nobody writes poetry to describe something. Poetry is the manipulation of our ability to speak and write. Architecture is a way to define space: whether it built, written, modeled, or drawn, it always articulates space. The space with.. 더보기
and the commercial caption read "fantasy, do not attempt," 아프다고 생각했다. 금요일 아침 침대에 누워 고민을 하다가 병가를 내면서도 내가 정말 아픈 건지 아프다고 착각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우스운 일이지. 무엇이든 느끼기 이전에 생각하면 망하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이런다. 아무튼 전자로 결론 짓고 나니 본격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주말에 걸쳐 내내 앓았다. 약기운에 어마어마하게 잤다. 약국에 가서 친구가 추천한 약을 샀다. 남자친구는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잘 먹고 있다고 아무리 말해도: 끼니 거르니 말고, 죽 먹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스프 같은 거라도. 마치 내가 굶기라도 할 것처럼. 나는 잘 먹었다. 감자 스프를 데워 먹고 계란이 들어간 만두국을 해먹었다. 꾸역꾸역 먹었다. 코와 목이 부어 맛이 잘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불을.. 더보기
"there shouldn't be this ring of silence, but what are the options," 10월에 여기로 이사하고 나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러 바닷가에 간 적은 여러 번이지만 정작 해변으로 내려간 건 7월에 여길 방문할 때 한 번.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말을 들은 한 여자애는 그건 거의 범죄 수준인데 클로이, 했다. 지난 며칠은 축축하게 추웠다. 사흘 연속으로 바닷가에 놀러갈 때마다 사방에 해무가 가득했다. 마지막 날이었던 토요일에야 날이 풀렸다. 갈까? 가자. 남은 사람들끼리 망설임 하나 없이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사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새벽이었고, 가로등은 너무 멀어 충분히 어두웠다. 안개까지 겹쳐 모든 것이 무채색이었다. 바다가 착각처럼 보였다. 서로는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어디 한 곳에 모아두고 더듬더듬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다들 주저앉아 꾸준한 파도 소리를 들었다... 더보기
잠들기 전 문득 고맙다는 말을 듣고 나는 또 뭘 잘못한 걸까 생각한다, 동기 언니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내부가 복잡해서 길을 잃기 십상이다. 두어 번 와본 적이 있었어서 미로 같은 골목골목이 살짝 기억날 것도 같았지만 아닌 척 일부러 헤맸다. 더군다나 가로등이 흐려서 몹시 어두운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거기 같았다.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차가 약간 울컥댔다. 차에서 내리면서 믹서기에 담겨 있던 와인을 쏟았고, 이사하면서 뒷좌석에 쌓아두었던 두루마리 휴지로 바닥을 닦았다. 전조등을 끄지 않고 꾸물댔더니 근처의 개가 한참을 짖었다. 언니한테 미리 받은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다. 부엌의 불을 켜고 보니 믹서기에는 와인에 불어터진 딸기만 잔뜩 남아있었다. 어젯밤에는 한참 짐을 싸다가 힘들어서 잠깐 드러누운 사이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해가 뜨기 전에 눈을 떴다. 그 와중에 추워.. 더보기
제출하지 못한 기분이 쌓여갑니다 나는 얼마나 멸망할까요, 쓰던 글을 여러 번 지웠다. 가득하게 할 말이 없다. 마음이 와글대는 걸 빼곡함이라 착각했다. 껍질처럼 살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비참하다. 화산재 같은 눈이 내리던 몇 주 전 상수에서 만난 친구는, 이 모든 행운과 기회의 맥이 끊어졌을 때 내게 남아있어줄 것들은 - 만약 있다면 - 과연 무엇일지를 염려하는 나에게 커리어 바닥을 찍고 있는 본인의 근황을 풀어놓으며 그래 그런 파도라도 꽉 잡고 있어, 라고 했다. 결국엔 다 흐름 타고 보는 거라며. 그렇나? 그렇다. 그러나 아무래도 조금 비참하다. 뚫려가는 달력을 본다. 미국으로 돌아온지 겨우 열흘이다. 체감시간은 한 달이 넘는다. 시차 때문에 골목처럼 헤맨 밤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발음도 예쁜 1월,의 절반이 갔다. 그러나 애초에 계획 없이 시작한 새해.. 더보기
그렇게 우리의 사방이 호흡으로 찬란했다, 서점에서 나와 들어간 식당에서 남자친구는 삼계탕에 소주를 시켜놓고 나와 마주보고 앉았다가 문득, 너 뇌과학 공부하잖아, 나 궁금한 게 있는데, 하더니 '기억'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왔다. 나는 나조차도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단어와 개념을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했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작용이 같은 자극 앞에서 예전보다 강해지는 걸 우리는 학습이라고 칭해, 치매는 기억하지 못하는 질병이고 PTSD는 망각하지 못하는 질병이고, 이런 식으로. 우리는 추위에 떨며 주위를 배회하다가 골목 여럿을 통과해 영화 에 나온 소설에 갔다. 우리가 첫 손님이었고, 담배를 피우던 주인분은 남자친구에게 불이 나간 천장을 좀 봐달라 부탁하셨다. 깨진 전구 조각이 떨어지는 밑에 서서 전구를 갈아끼우는 남자친구를 보.. 더보기
그래서 여기에 다정을 약속한다, 연달아 있는 시험 세 개 중 맨 첫 시험이었을 목요일 시험이 다음 주 월요일로 느닷없이 미뤄졌다.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답장을 보내고 동기 언니와 공부 스케쥴을 상의하고 비행기 시간을 재차 확인하면서 갖가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해보다가 뭐 어떻게 되겠지, 마음을 내려두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간 적립해둔 피로가 와르르 무너져서인지, 밤에 씻고 침대에 앉아 무릎 위에 랩탑을 올려 두고 프레젠테이션 두 개를 한꺼번에 만들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구겨진 자세로 새벽에 깨서 랩탑을 바닥에 내려두고 램프를 끄고 이불을 제대로 덮고 낙하하듯 다시 잠이 들었다. 아주 푹 자고 났더니 이른 아침에 깼을 때 마음이 왠지 조금 허했다. 친구가, 무슨 일 있었어? 뒤늦게 답장을 보낸 걸 몇 시간의 텀을 두고 확인했다. 대답.. 더보기
"우린 트리스탄과 이졸데 역할을 할 거야 하지만 내가 꼭 흰 돛을 보게 하자," 땡스기빙에는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다른 짐과 함께 조수석에 두고, 진하게 내려 텀블러에 담은 커피를 마시면서 남쪽으로 차를 네 시간 정도 몰아 친구 집으로 갔다. 출발할 때만 해도 은근 추워서 입고 있던 스웨터가 고마웠는데 친구 집은 내가 있는 곳보다 한참 남쪽이라 그런지, 어렵지 않게 찾은 친구 집 앞에 주차를 하고 마중 나온 친구를 껴안을 때 옷을 밀치고 들어오는 열기를 느꼈다. 친구는 운전 한 달 반 만에 장거리를 운전해온 나를 신기해했고("운전 7년차인 나도 제일 오래 운전한 게 몇 달 전에 세인트루이스랑 시카고 왕복한 건데") 플로리다 주립대를 다니는 친구 동생은 아쉬워했다("운전해서 오는 거 알았으면 카풀할 걸"). 삼 년 전에도 한 번 간 적 있는 친구 조부모님 댁에서 친.. 더보기
그래서 골목과 언덕 그리고 음표 같은 것들을 부러 생각해, 많은 부고가 그러하듯 생각하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던 부고를 갑작스레 전해 듣고는 추운 밤길에 멈춰서서 전화를 걸며 울다가 체했다가 토했다가 이내 남은 며칠을 쏜살같이 흘려 보냈고 여러 개의 늦은 시각과 밤거리를 지났고 많은 사람들을 차례대로 껴안았고, 밤을 꼬박 새며 짐가방을 싼 뒤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고 다른 도시로 이사를 온 몽롱한 상태에서 또 다른 부고를 무력하게 전해 들었다. 역시나 카톡의 가지런한 활자들로 전달 받은 소식이었고 역시나 매스컴을 타는 비극이었으며 나는 그 여과없음에 뺨을 한 대 맞은 기분이었지만 시차 때문인지 온도차 때문인지 첫 부고 때와는 달리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만 내 얼굴 어딘가에 고여 있는 듯한 불편한 울컥함을 없애려고 넋을 반쯤 놓고 늦은 저녁 익숙하지 .. 더보기
모든 설명은 이따금 구차하네요 나는 정적을 듣네요, 기본값이 실패인 일을 하고 있다. 일단 실패를 가정하고 들어가도 이상할 것이 없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로부터 쉬지 않고 들어와서 늘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진심으로 숙지하기까지는 너무, 오래 걸렸다. 내가 알고자 하는 건 이 세상에서 아무도 모른다, 이 사실에 대한 마음가짐이 단순한 주지에서 그럴싸한 숙지로 바뀌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건 작년 말에 겨우 진실로 깨우쳤고, '디폴트 = 실패'의 공식은 이번 달에 드디어 머리에 새긴 것 같다새겼다. 이제라도 나의 일부가 되어서 가까스로 다행이다. 겨우 마음이 편하다. 따라서: 낭비에 익숙해지기로 한다. 낭비는 곧 죄라고 생각했고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생각은 변하지 않겠지만, 못 지킬 약속을 아무렇게나 흘리고 다니는 것보다는 더.. 더보기
"so can't you see we're in the middle, somewhere," 시카고에 있던 사흘 동안 원래 만나려던 친구들 외에도 몇 명을 더 만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우리 기숙사 RA였던 친구도 있었다. 우리보다 한 학년 위로, 재작년 건축 학사로 졸업해 지금은 시카고의 한 건축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직업이나 성격이나 영락없는 Ted Mosby다("How I Met Your Mother"). 본인은 자신이 Ted Mosby보다는 Barney에 가깝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나... 어쨌든, 학부 때에는 우리에게 사뭇 진지한 척 얘들아 술 마시면 안 되고 밤에 떠들면 안 되고 파티 열면 안 되고, 이런저런 훈계를 했던 그 친구와 함께 그 친구가 사온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하는 건 또 신기한 일이었다. 밖에서 몇시간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우리가 저녁으로 먹다 남긴 피자를 하나 집..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