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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until morning breaks, we're sunk in sleep,"


내가 가만히 봤던 고요는 이런 것들이야:




그런데 요 며칠, 아침에 눈을 뜨면 이런 광경을 못 본다. 꼴에 겨울이라고 하늘이 잔뜩 흐려서 아침마다 머리가 무겁다. 누가 건드리면 펑펑펑 눈을 쏟을 것 같은 하늘인데 어쩐지 눈은 딱 한 번 밖에 오지 않았고.


일주일 전 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면서 뉴스를 보니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어 있었고 나는 놀라지 않았고 대문을 닫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친구는 쩍쩍 하품을 하면서 차에 시동을 걸었고 나는, 전에 내가 말했던 그 여자 대선 후보 있잖아, 지금 개표 거의 다 끝나간다는데 그 사람이 대통령 될 거 같아, 했다. 친구는 아이팟으로 노래를 고르면서, 그래? 섹시해Is she hot? 물었다. 내가 주저하며 웃자 친구도 웃으며 차를 몰다가 당선인의 이름을 묻더니 나를 따라 이름 석 자를 발음하고는, 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내 나라 대통령 이름은 좀 알아야 되지 않나, 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틀 후, 친구는 언제나와 비슷한 모양으로 차에 시동을 걸고 아이팟으로 노래를 고르다 말고 물었다. 그, 한국 대통령 당선인, 박정희 딸이라며? 그래, 내가 저번에 말해줬잖아. 그땐 잘 몰랐는데 뉴욕타임즈 읽다가 생각났어, 나, 그거 배웠는데, 수업 시간에... 뭐, 그 한국 문명Korean Civilization 수업? 응, 그때 박정희에 대해서도 배웠거든. 그 후 친구는 별 말이 없었고 나는 오늘 너 일 나오는 마지막 날이니 그동안 차 태워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커피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커피와 베이글을 사러 친구가 좋아하는 가게에 갔다. 그 가게에는 커다란 기계가 쉬지 않고 커피를 볶고 있어서, 5분만 가게 안에 있다 나와도 온몸에 커피 냄새가 진하게 밴다. 그 가게에 다녀온 날이면 그날 밤 머리카락 끝에서 나는 커피 냄새를 맡으며 잠들 수 있다. 마치 커피로 머리를 감은 것처럼.


친구는 이런저런 문제로, 어차피 내년 이른 여름 그만둘 일자리 좀 일찍 관두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댔었다. 그러더니 봄에 있을 시험 준비에 매진하고 싶다며 겸사겸사(?) 사직하게 된 것. 게다가 마침 억지로 써야하는(?) 비행기표가 있어서 부모님께 강제로 소환 당해 한국에 몇 주 가 있게 되었는데, 그 춥고 친구도 없는 곳에서 자기 어떡하냐고 툴툴대는 것이었다. 너 없어서 나 이 추위에 어떻게 걸어서 출근해, 망했네. 나도 장단 맞춰 투덜거렸다. 네가 운전만 할 줄 알았으면 나 없는 동안 너한테 내 차 빌려줬을 거야, 진짜... 친구는 뭐가 미안한지 머쓱하게 그 말을 서너 번은 하더니, 다음 날 공항에 가기 전 우리 집에 들러 예전에 나한테서 빌려갔던 청소기와 함께 냉장고 속 음식 잔뜩을 안겨 주고는 집 열쇠를 맡기고 떠났다.


주말 동안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잤다. 평소 출근 시간에 눈이 떠지면 다시 자고, 한두 시간 후 눈이 다시 떠지면 또 자고, 그 사이 아쉽게 끊어졌던 꿈을 이어 꿨다. 그러다 정오 전후로 눈이 떠지면 겨우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너무 많이 자서 머리가 아프네,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나를 비웃었다("열 시간 자서 머리가 아픈 게 어딨어, 열아홉 시간은 자야 머리가 아프겠지."). 그래도 좋았다. 성탄절은 공식휴일이었고, 그 전날은 월요일이라 사람들 대부분이 길게 쉬려고 휴가를 냈다. 휴가를 뒤로 몰아둔 나는 꿋꿋하게 일하러 나갔다. 생각보다는 출근한 사람들이 많았다. 자꾸 끊어 일하고 끊어 쉬다 보니 생체리듬이 깨진 것 같다. 일요일이 토요일 같았고 내일이 벌써 주말 같다. 그래도 내일 하루만 더 일하면 다음 주 목요일까지 내리 쉰다. 일하기 시작한 이후 첫 공식 휴가다. 집에서 생일을 못 보낸지 팔 년째이고 집에서 추석을 못 보낸지 육 년째, 집에서 구정을 못 보낸지 사 년째이지만 그래도 연말과 연초는 딱 한 번 빼고는 쭉 집에서 보내온 것 같은데 처음으로 타지에서 2012년을 보내고 2013년을 맞는다. 나는 일요일에 내슈빌에 간다.



+ savery & the banjo consorsium - until morn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