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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네가 말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각자의 불행을 자랑처럼




/ SBTRKT - Hold On /



네가 말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각자의 불행을 자랑처럼 나열하는데 익숙해졌어, 그중에서 누가 더 불행한가 경쟁하면서 뿌듯해하는 거야.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행이라 부르는 것들은 더는 불행이 아닌 걸까.

숨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잠이 적었고, 졸렸고, 그래서 많이 잤고, 아직도 졸리다. 나는 원래 잠이 많고, 잠을 제대로 못자면 내 페이스를 잃는다. 숨 돌릴 시간이 생겨서 드라마 하나를 보기 시작했는데, 극중에서 두 가지가 지켜보기 힘이 든다. 신하균이 온갖 불행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받아내는 것과, 전공의들이 잠이 모자라 끙끙대는 것. 솔직히 말하자면 후자가 보고 있기 더 힘들다. 보고 있는 내가 다 벅차다. 나는 잠이 부족하면 숨을 잘 못 쉰다. 심장도 이상하게 뛴다. 불안은 나의 근본이다. 원하지 않는 불면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안다.

수면 부족의 끝을 달리던 새벽, 도서관 1층 쇼파에 앉아서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졸았다. 입 벌리고 목이 꺾인 채로 졸고 있는 나를, 지나가던 친구가 툭 쳐서 깨우고는 웃었다. 급히 입을 다물던 나는, 멋쩍어졌다. 마주 앉아 잠시 이야기를 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온갖 문명 수업Civilization을 듣고 있다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다. 재미있다고 했다. "조선 전에 고려가 있었단 거, 처음 알았어. 그 뭐냐, 고려? 신라? 조선 만든 사람 이름도 배웠는데... 이렇게 한국에 대해서 배운다구. 나도 한국 사람이니까 도움이 되잖아. It's useful, you know. I actually learn stuff." 나나 그나 간간히 웃었다. 나는 생각했다, 너는 여전히 솔직하구나, 하지만 나는 얼음 같은 공기의 간극을 느꼈다. 학기 말 새벽이었기 때문이다. 추웠기 때문이다. 이번 주 초부터 기온이 쭉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 건물 안마저 몹시 추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추위는 사실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으로 대화가 길었던 그때도 몹시 추웠고, 몹시 추워서 손등이 빨간색이었고, 나는 그 빨간색이 솔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몰려드는 미시감을 참을 수 없었다.

터널 같은 외로움. 어디서 읽은 구절인지 기억이 안 난다. 친구가 방금, 너와 살고 싶어, 라고 문자를 보냈다. 내가 위로받는 몇 안 되는 순간들, 답장을 할 수가 없잖아.

우리, 결혼해야겠다! 라는 말에는,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구멍이 아프다. 당신들이 자꾸만 죽은 내 친구 친족을 계획없이 언급할 때와 같은 경우다. 제발, 잘 모르면 그냥 언급조차 하지 마시라. 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말할 수 없는 것이 늘어만 가는데, 왜 다수의 경우 나와 반대의 양상을 보이는지 궁금할 따름.
 

내가 웬만해서는 타인에게 어느 정도 기본적인 모성애를 느낀다고 말했던 까닭은, 너의 악몽을 끌어안는 상상을 자주 하기 때문이야. 네가 내 품에서 갖가지 나쁜 꿈들을 차곡차곡 접는 상상을.

그래도 우리가 친구라는 확신을 가끔이나마 마주할 때마다... 안도하는 내가 안쓰럽다.

이 글에는 개연성과 순서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