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어떤 이 분 남짓은 정말 영화 같았다. 끔찍했고, 그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음이 더 끔찍했다. 그런데, 영화 같다는 건 뭐지? 모서리를 만지면서 한참 생각했다. 나를 살고 있는 나를, 나의 바깥에서 내가 관람하게 될 때, 인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경로는 정말 영화 같았다. 그래서 생각이 자꾸 돌고 돌았다. 내가 나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면서 걱정을 했다. 여러 사람에게 주지 받은, 과학에서의 절대 금기는 과장과 허풍overstate. 그런데 난 인생을 과장한다. 물론 생활을 과장하지 않을 순 있어, 생활은 인생의 부분이니까. 그렇지만 결국 생활은 인생이 될 순 없는 거구나. 별 수 없네.
오늘부터 월급이 정상화되었다. 퇴근길에 엄마에게 전화로 자랑을 하자 엄마는 얼마니? 하고 물었다. 전철에서 내렸는데 바람이 너무 셌다. 갑자기 기온이 많이 떨어졌다. 주말에 오래도록 비 온 이후로 그런 것 같다. 우편함을 확인하고 집 근처 밥집에서 사온 비빔밥을 저녁으로 먹으며 멍청하게 앉아 있다가, 차를 두 잔 연달아 끓여 마시고 포틀랜디아를 보면서 깔깔 웃었다. 아프기 싫다. 독감이 유행이라고 한다. 그래서 손을 평소보다 더 오래 그리고 여러 번 씻었다. 우리 집 손비누는 지겨운 코코넛향이다. 비타민도 먹고, 차를 두 잔 더 마셨다. 뜨거운 걸 자꾸 먹으니 몸이 줄줄 녹아 흐를 것 같았다. 오늘부터 개강이라 어젯밤 한국에서 돌아온 룸메이트 동생에게 차가웠던 몸에 갑자기 피가 도는 기분을 열심히 묘사해줬지만 동생은 난처한 표정으로 언니, 미안한데 그런 기분 잘 모르겠는데... 라고 했다. 공기가 텁텁해서 나는 난방을 껐다. 대신 앞 여밈 없는 아주 큰 가디건을 잠옷 위에 겹쳐 입었다, 아프기 싫으니까. 좋아하는 옷인데 너무 커서 - 성우는 왜 양탄자를 입고 다니냐고 놀렸고 Chelsea는 옷이 널 잡아먹는 것 같아, 했다 - 집에서 입기 더 좋은 옷이다. 엄마는 작년 이맘때 이 옷을 사주면서 십 년 이십 년 입으라고 했는데, 집에서만 입다 보면 그것도 가능할 거야.
어제는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지난 달 친구에게 부탁했던 황인찬의 시집을 받아볼 수 있었다. 원래는 다음 달에 마음이 좀 편해지면 읽을 생각이었지만 저녁 식사 후 네 시간 동안 집에 못 들어갈 일이 생겨서 그냥 다 읽어버렸다. 창백해서 좋았다. 시집을 하루 만에 읽는 건 유희경 시집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 때도 국제선 비행기에 그 시집 딱 한 권만 들고 타서 그랬던 거였는데. 아무튼 좋았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책을 구입하거나 부탁하는 일이 없도록. 아직은 정말 한참 남긴 했지만, 이사만 생각하면 골치가 아프다. 지난 몇 년간 짐이 불어도 너무 불었다. 그래도 어떻게 떠나긴 떠나게 된다. 모든 것에 미시감을 느낀다.
나를 제일 흔들었던 안부는 그리운 시간을 가득히 살아달라는 말. 하필이면 기척없이 눈이 떨어졌고, 현관의 전구가 나가 있었다. 거짓말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좀 덜 영화 같았을 거야.
+ mellowdrone - fashionably uninvi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