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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통의 존재

2016 수국, 장미, 히아신스, 튤립, 이렇게 발음만으로도 입안 가득 풍성한 꽃 아닌 짖궂은 뿌리에 매달린 식물들 버릇처럼 해를 향한다. 노을 따라 집을 나서서 나의 동쪽 아닌 서쪽에 물을 두어봐도 딱히 나쁜 일이 있진 않았다. 그렇다고 시시했던 건 아니고, 특별하다 믿었던 것들을 신봉하다 관둔지 오래 되었지만 파도와 안개 앞에서는 자꾸 어지러웠으니까. 낙서 지우는 사람의 마음으로 간밤을 구길 때마다 나 이렇게 끝까지 재미 찾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결국에는 내가 있는 곳마다 거기가 곧 낙원인 걸. 그게 아니라면 이 서사는 다르게 설명 될수도 없다. 얼굴을 가리고 눈을 감는다. 이럴 줄 알았을까, 싶은 그런 선명한 순간들은 어차피 창문만 열면 또 보인다. 그게 근육 기억이 아니라면 별 달리 뭐라고 불러야 했을.. 더보기
2015 새로운 해가 시작된지 삼 주나 지났는데 그간 너무 바빠, 이미 이만큼 멀어진 2015년을 이제야 되돌아본다. 연초에 핸드폰을 바꿨는데, 제대로 찍지 못했거나 실수로 찍은 사진을 모아두는 사진첩 폴더를 따로 만들었다. '잘못'이라 이름 붙였다. 하는 일이 고되었다. 구문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은 예상대로 힘들었고, 구문시험 이후의 매일매일은 예상 외로 힘들었다. 과학만으로 힘들면 좋을 텐데, 그게 차라리 축복이라는 걸 깨닫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쓸모 없어지는 기분 때문에 나는 자주 곤란했다. 가을이 제일 힘들었다. 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하기 때문에 가을에 힘든 기분이 드는 게 싫었다. 연말이 끝나갈 때까지 날은 좀처럼 추워지지 않아서 가을이 길었고, 기분도 길었다. 영영 추워지지 않을 것 같았.. 더보기
정확한 사랑의 말로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네 소파에서 잠드는 게 좋아 안전한 기분이 들거든 네가 이불을 가져다주면 나는 내 얼굴을 가리지 널 사랑해 널 사랑해 그렇게 말할래 하지만 크게 말하는 건 힘드니까 아예 말하지 말아야지 </center> 네 얼굴을 외운 건 오래 오래되었고 네 집을 돌아다닌 건 이제 네 시간 쯤 되었네 네 소파에서 잠드는 게 좋아 안전한 기분이 들거든 네가 이불을 가져다주면 나는 내 얼굴을 가리지 널 사랑해 널 사랑해 그렇게 말할래 하지만 크게 말하는 건 힘드니까 아예 말하지 말아야지 나 오래 머무를 것도 아닌데 그리고 단어란 얼마나 무용한 장치인지and words are futile devices + sufjan stevens - futile devices (live) 더보기
sketch 012 "That is so not true." - Why? I'm simply stating facts. "First of all, they are not facts -- how do you even just assume like that? Also, you said it with a lot of emotions." - But emotions are the factual things that my body possesses. "That's like the most dangerous thing I've heard... today." - I'm glad. "To say something dangerous?" - To know that I matter. 더보기
만약 사랑amour과 영원toujours의 운韻이 달랐더라면 우리는 그 둘을 똑같이 여길 생각 아마 절대 못했을텐데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유일하게 살아남은 연인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sketch 011 어쩌면 그럴 수도 더보기
sketch 010 "누나, 나도 요즘 만나는 애 생겼는데." - 오! 축하해. 잘 됐네, 우리 학교 애야? "응. 아니. 음, 우리 학교 의대 다녀. 나보다 한 살 많으니까 누나랑 동갑. 그러고보니 연상 만나는 건 처음이네... 몇 달 전에 친구 집 파티 가서 처음 만났는데 그 뒤로도 몇 번 더 만나다가, 이렇게 됐어. 좋아. 재밌고, 똑똑하고, 나처럼 춤도 좋아하고, 키도 커. 170 cm 좀 넘는? 멋있는 여자야." - 와, 너네 둘이 나란히 서있으면 장난 아니겠다." "하하... 그런데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지 자꾸 혼자서 생각이 많아져." - 어떤? "누나도 알다시피 나 대학 다니면서 중간에 길게 쉬는 법 없이 계속 연애했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사실 얘가 날 먼저 좋아해서 만나게 된 건데, 그런 적은 거의 처음인데.. 더보기
sketch 009 “노력도 많이 해봤는데 걔랑은 그냥, 말이 잘 안 통해. 대화가 안 이어져.” - 그래도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다고 단정짓기에는 좀 그렇지 않아? 너한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거잖아. “물론. 아니, 내가 지금 걔가 이상하거나 뭐 나쁘다거나, 그렇다는 건 절대 아니고... 쉽게 말해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인 거지. 이야기가 안 통한다니까? 둘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해야하나 늘 생각해야하고, 그러다보니 대화가 자꾸 끊어지고, 힘들어.” - 그 사람이랑만 그런 거야? 예를 들어서... 나랑은? 나랑은 얘기가 잘 통해? “Effortlessly.” 더보기
sketch 008-2 https://medium.com/science-scientist-and-society-korean/e9dfe744eb4b http://www.nature.com/naturejobs/science/articles/10.1038/nj7448-277a (원문) "링크된 글, 재밌지?" - 응. 찔리네... "어떤 분야든 깊게 파고들면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인 것 같아." -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음과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이론조차 불가항력적으로 다른 이론에 의해 교체될 수 있음'이라는 이 말 이거, 진짜야. 비슷하게, 최재천 교수가 쓴 글 있었는데. 과학이야말로 가장 민주적인 활동이라고. http://m.chosun.com/article.html?contid=2012061802163&sname.. 더보기
sketch 008 "My interest in architectural history is in constantly reconstructing and reinventing it as a language. To me, the most convincing parallel is with poetry, because nobody writes poetry to describe something. Poetry is the manipulation of our ability to speak and write. Architecture is a way to define space: whether it built, written, modeled, or drawn, it always articulates space. The space with.. 더보기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선택은 드물게 찾아왔고, 그럴 때면 나는 입에 대본 적도 없는 담배를 찾고 싶어졌다. 강요하듯 지켜보고 있을 눈(들)을 생각하면 안개를 삼킨 것처럼 한마디도 뱉을 수 없는 입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헛기침을 하면 그제야 내 호흡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낡은 피를 흘리는 심정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보면 종국에는 입맛이 썼다. 입가에 붉게 침이 고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르다가 손등마저 붉어지면 그제야 입맞춘지 꽤 되었음을 상기하고, 아무도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 깨닫지. 그건 번민이라 불러야 했지만 나는 그 노을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너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너도 소실점을 향해 가듯 나를 사랑해주리라 몰래 소망했고, 너는 내가 아무런 단서와 방편 그리고 계획 없이 그.. 더보기
sketch 007 "What's your plan for today?""Not die.""And?""Continue to exist." 더보기
「히스 레저와 결혼하기Marrying Heath Ledger」 (부분) … 토요일 밤을 맞아 친구들은 신이 나서 오랜만에 술을 마시러 나갔고 그말인즉슨 새벽 네 시 정도까지는 집이 비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옳다구나 싶어 니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니콜은 컵케익 가게에서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근처에 사는 니콜은 통화를 마친지 10분만에 우리집 초인종을 눌렀고 우리는 거실 소파에서 뒹굴며 사랑을 나눴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니콜은 내 방 침대보다 소파에서 하는 게 더 좋다고 했다). 서로를 안는 내내 니콜의 머리카락에서는, 그애가 아마도 컵케익 가게에서 묻혀 나왔을 달큰한 설탕과 짙은 버터 냄새가 났다. … 더보기
72.10비트 미안하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이라도 듣고 싶고. 그 말이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나 오가는 말은 드물고. 역시나 말에 기대는 나의 증상을 깨닫고. 손톱은 물어뜯을수록 작아지니까. 나는 내가 너무 작게 느껴져서. 내가 희미해졌는지 궁금하니까. 그 경도를 확인하는 순간이 겁이 나서. 차라리 나를, 찌르지 그러니. 바람이 불면 숨지 않고 앉아서 온몸으로 압력을 안고. 가끔 안부 대신 존재여부를 묻고. 모르는 사람들의 질문에 웃기만 하고. 그러다가 바람이 약하다 싶으면 고개를 들어. 저만치 있는 남들(주로, 성공한 동기들)을 봐. 내가 받는 축복과 내가 팽개친 기회들을 다시 한 번 망각해. 게으르게 살고 있어. 그저 너의 틈에 갇혀 뭘 하고 있나 의아해져. 차라리 나를, 죽이지.. 더보기
72.09비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Prism and Ism I was once floating on my shoulder sleepy In Your private polychromatic time while In Difference (diagonal contrast blinking subtitles) Could sing every possible direction of scenery Maybe lost In the middle of foreign dreams and creams Ancient cotton soft and loft Fuzzy and vivid As if seconds and minutes were giving birth to hours Echoes in my left collarbone collapsing like Fireplace hair Gre.. 더보기
sketch 006 "싫어?" - 싫은 게 아니고, 어떤 거냐면... 그러니까 내가 사랑을 못 받고 자랐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무조건적인 애정은 익숙하지 않단 말이야. "왜 고민이야? 누가 널 예뻐해줄 때, 예쁨 받을 수 있을 때 즐겨야지." - 즐기라고? "어. 그러면 돼." - 아니 그러면, 나는 뭐라고 해야 돼? 아 예쁘다, 귀엽다, 이러면 뭐라고 말해야 돼?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면 돼? "아니. 그냥 계속 귀엽게 웃고 있으면 돼." 더보기
청춘10 진짜 아프면 들추어보지도 않는다고.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건데,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입을 떼었다. 나는 그 다음 말을 예상할 수 있었다. 내가 견뎌야 할 중력을 직감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애초에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니라고 생각해. 바꾸어 말하면, 살았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니? 질문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들켰을 것이다. 몇 초 가량이 지났다. 우리들 중 외치는 쪽은 없었다. 다시 몇 초 가량이 지났다. 소란의 부재도 지났다. 가끔 숨이 가쁠 뿐이었다. 이후 그 전화는 연초를 언급하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이건 아무에게도 얘기한 적 없는 건데. 추위가 감당이 안 되어 차라리 쇠를 든 순간이 있었다. 허락은 없었다. 그게 다행이었냐면, 그래요, 다행이었으리라 믿는 편이 쉬우니까요. .. 더보기
72.08비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더보기
this could've been beautiful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I'm thinking about time and space. I'm thinking about poetry and prose. I'm thinking about science and aesthetics. I'm thinking about people I know. I'm thinking about people I do not know yet. I'm thinking about people I would never be able to.. 더보기
청춘09  K 오빠는 우리가 왜 낭만을 잃은 세대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S는 우리는 사실 너무나 곱게 자라왔고 앞으로도 너무나 곱게 생활할 거라고 했다. 나는 다 맞는 말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앉아서 내 낭만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뭐냐고 나에게 물었다. 자꾸만 생각나는 사진이 있었다. 지난 달에 뉴스기사를 훑다가 본, 등록금 동결 시위 사진. 친구의 옛 여자친구가 삭발을 한 채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 안에 뭔가가 있었다. 괜히 뜨끔했다. 올해 초 그 애가 술을 따라주며 한 말이 허공을 맴돌았다. 분노하라고. 분노하면 지키고 싶은 것이 떠오르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게 경험과 비경험의 차이인가 싶다. 날 스친 것들은 한가득인데 관통하는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