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장 보통의 존재

2012년 9월 28일 금요일


선택은 드물게 찾아왔고, 그럴 때면 나는 입에 대본 적도 없는 담배를 찾고 싶어졌다. 강요하듯 지켜보고 있을 눈(들)을 생각하면 안개를 삼킨 것처럼 한마디도 뱉을 수 없는 입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헛기침을 하면 그제야 내 호흡을 가늠할 수 있었다. 낡은 피를 흘리는 심정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다보면 종국에는 입맛이 썼다. 입가에 붉게 침이 고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등으로 입가를 문지르다가 손등마저 붉어지면 그제야 입맞춘지 꽤 되었음을 상기하고, 아무도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도 깨닫지. 그건 번민이라 불러야 했지만 나는 그 노을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너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너도 소실점을 향해 가듯 나를 사랑해주리라 몰래 소망했고, 너는 내가 아무런 단서와 방편 그리고 계획 없이 그냥 좋았던 거고, 그러나 그렇게 내가 그냥 좋기만 했고, 어떤 현상의 가설처럼 고작 그 문장 하나가 우리 세계의 전부였으며 어떤 유기적인 증명도 품지 않았던 거지. 별 수 없이 초라해지면서.


(...)


그 후로 나는 몰래 몇 개의 글자를 적었고, 그들은 모조리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분절난 단어들은 그대로 두었다가 먼지가 앉으면 소각하듯 내다 버렸다. 도망칠 곳을 찾아 살을 만지다가 결국에는 포기하고, 여름을 문질러 없애기도 전에 가을을 내다봤고, 도처에 널린 포옹을 거절하다 결국 모든 것을 읽고, 소년이 자신이 소년임을 알아채는 과정을 목격했고, 조금 울고 싶었고, 어디 내 상처와 성장은 없나 두리번거렸다.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언어가 부러지는 것이 이제 더는 무섭지 않았다. 할 수만 있다면 패배와 숙면을 끌어 안고 빗소리를 들으며 허락 없이도 잠들고 싶었다.


나는 그냥, 아주 초라하고 얇은 마음으로, 왜 내가 네 욕망이 아니었나를 알고 싶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