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기간이 도대체 어떻게 지나가는지 의식하기 힘들 정도로 정신없고 바쁘다. 내가 절절하게 체감하고 있는 것 단 하나는 어떻게든 빨리 기말고사를 다 치고 서둘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사실이다. 6월 초부터 여름학기를 듣기 때문에 그냥 한국 가지 말까 하고 고민했던 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뒤늦게나마 비행기표를 (그것도 꽤 싼 값에) 산 걸 두고두고 감사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제 비행기 탈 날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여섯 개였던 기말고사도 두 개 밖에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어제 바이오와 칼큘 기말을 치고 난 뒤, 밤에 커먼룸에서 애들이 신나게 웃고 떠드는 걸 들으며 컴싸 공부를 하다가 문득 생각한 것은 내가 정말 이 엄청난 양을 꾸역꾸역 막아내고 있다는 것. '꾸역꾸역'이나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나, 둘 다 그렇게 긍정적인 표현은 아니다. 고로 삶에 있어서 교정이 필요하다. 도서관에서 지나랑 같이 생물 공부를 하면서 우리가 수십 번 했던 다짐은 (솔직히 지나는 공부를 엄청 잘 해서 별로 이런 다짐도 필요 없을 것 같지만) 다음부터는 지금보다 더 구체적이고 계획적인 학기를 보내자는 거였다. 이번 여름 학기부터 조금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사는 걸 연습해야겠다.
음, 나는 조금 전에 컴싸 시험을 보고 나서 바나나 하나를 아침으로 먹으며 컴퓨터랩에 와서 화학이랑 캠랩 공부할 것들을 뽑는 중인데, 사실 뽑을 것들이 절반 정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밍기적대고 있는 이유는 너무 눈치 보여서! 화학 problem set이랑 작년 기말 문제/해답만 뽑았더니 백 페이지 정도 나와서 (다행히도 양면 인쇄라 오십 장 정도) 인쇄물을 정리하고 꺼내주고 있던 랩 알바생이 '바로 너 같은 아이들 때문에 내년부터 인쇄비 받는 거란다 똥개야'라는 표정으로 한 2초 쳐다봤다.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와서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캠랩 문제들도 다 뽑아 버렸다. 인쇄 다 끝나면 모자 푹 눌러쓰고 받으러 가야지.
모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학교에서 모자 - 다른 모자도 아니고 캡 - 를 쓰고 있으면 상태가 최악이라는 소리다. 지금 내 꼴을 "폐인" 말고는 딱히 표현할 길이 없다. 도서관에 계속 있느라 요새 밥은 계속 바나나 아니면 베이글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요새 안 먹던 아침을 먹고 다녀서 생각보다 타격은 작은데 이제 베이글만 생각하면 토 나온다. 그리고 한 사흘 간 열 시간도 못 잤더니 몸에 무리가 온다. 어제 생물 시험을 치러 아침으로 또 바나나를 사들고 시험실에 들어갔더니 지니가 얼굴이 핼쓱해졌다고 했다. 하하 그래도 살 좀 빠졌으니까 좋은 거야? 라고 했더니 아니, 라는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주절주절 뭐 피곤하네 어떠네 해 봐도 다 똑같이 힘들고 피곤하니깐 어쨌거나 다시 원점인 결론으로- 조금만 버티고 신나게 비행기 타고 집으로 가자구요! 집에 가면 나는 가족들이랑 친구들이랑 시간도 보낼 수 있고 못 읽었던 책도 읽을 수 있고 (일단 생각하고 있는 건 The Reader, The Life of Pi, 그리고 한국소설 하나 정도) 영화도 볼 수 있고 (박쥐 - 지금 네이버 영화로 확인해 보니깐 열받은 관객들의 1점 폭격 투하에 현재 평점 5.57에 빛난다, 역시 평이 극과 극에 달하는군, 하지만 나랑 취향이 맞는 이동진이 10점을 주었으므로 - , 마더, 똥파리, Angels & Demons, 순지) 야구도 보러 갈 수 있고 (그러니까 롯데는 이제 삽질 그만하고 좀 잘 해보는 것이 어떨까?) 잠도 잘 수 있고 (야호!) 회도 먹을 수 있고 (지난 겨울에 이상하게 회를 거의 못 먹어서 너무 슬펐지) 그리고 나는 알바생의 눈빛을 피해 인쇄물을 픽업하러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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