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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저녁이 시들기 전에 서둘러 침대를 데우고 마저 누우면











일요일 밤마다 리와 전화를 한다. 자주 문자 주고 받으며 지내는 버릇은 둘 다 없기 때문에 조금은 의식적으로 만든 일정이다. 지지난 주에는 운전을 하면서, 지난 주에는 공항을 빠져 나오면서 전화를 했고 그제는 집 거실 소파에 누워서 전화를 했다. 나는 월마트에서 막 돌아온 참이어서 발 아래에 비닐봉투 여러 개를 아무렇게나 던져둔 채였다. 그럼 둘이 언제 같이 살 거야? 당연하다는 듯 리가 물었고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행복한 건 알겠다고, 그리고 그게 잘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리는 행복을 분석하거나 이해하려 들지 말라고 행복은 그냥 행복이라고, 행복은 행복 그대로 끌어 안으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건 나를 잘 알고서 하는 말이었다. 열흘 전 모교가 있는 도시에 갔을 때에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십 대 초반에 같이 살던 친구들과 이십 대 초반 비슷한 모양으로 거실에 널부러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심층적인 별자리 읽기에 빠져 있는 힙스터 친구는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의 트릴로니 교수처럼 내 탄생 행성들을 읽어주며 너는 감각이 타고나길 예민하고, 파도처럼 사방으로 요동치는 깊고 사나운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여간해선 그걸 피부 밖으로 잘 나타내지 않는구나, 그렇게 말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시던 나는, 그게 내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감한 사람이 될 거라는 신호는 아닌가 가끔 걱정이 된다고 고백했다. 임상심리 박사과정 중인 친구는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너는 감정을 머리로 해석하고 처리할 뿐이야, 그건 사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에게 종종 내려지는 행동교정 치료법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건강한 감정 해소 방법인 거지, 진단을 내리듯 그렇게 말해주었다.


어젯밤 함께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며 오늘 하루 어땠냐고 이제 기분은 좀 괜찮냐고 묻는 조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순서 없이 들려주었다. 다들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그게 나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는 건 사실이지. 하지만 모든 걸 피부로 부딪히고 직접 뒹굴고 그러다가 좀 다치면 피 흘리는 것 숨기지 않고 남들에게 다 보이게 아파하고 그러나 결국엔 아물고. 그렇게 감정을 한바탕 몸으로 통과해 걸어나가는 것만이 결국, 사람다움을 최대한으로 확장해서 살 수 있는 방법 아닐까? 건강만으로도 좋은 삶이겠지만 그게 내 감정의 범위를 어떤 식으로든 제한한다면 그건 과연 건강일까, 너의 면적을 나의 손으로 훑는 일만이 나의 현재에서 제일 실체적인 사건인데.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여과도 망설임도 없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끝없이 가보고 그 두 지점 사이의 모든 것을 전부만큼 느끼고 싶어...


약간은 절망적인 심정이 된 나의 횡설수설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조는 식탁 위의 빈 접시를 밀어두고 내 손을 움켜쥐고 그런 모든 이유 때문에 나를 가장 상세하고 구체적인 기분으로 그러나 너무나도 생생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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