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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주말이 지나면서 써머타임도 끝이 나서 이제는 매우





주말이 지나면서 써머타임도 끝이 나서 이제는 매우 빨리 어둑해진다. 은둔하기 좋은 달이다. 공백이 아까워서 밖으로 나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큰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애인이 감정적으로 바람피는 거emotional cheating랑 육체적으로 바람피는 거physical cheating 중 뭐가 나아?

도서관에 앉아있다 이상한 질문을 받았다. 둘 다 싫을 것 같은데요. 당연히 그렇겠지, 그래도 딱 하나 골라야 한다면 뭐가 차라리 낫겠어? 어렵네요, 그나마 후자가 조금 덜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왜? 글쎄요, 몸과 몸이 닿는 것보단 마음과 마음이 닿는 게 더 비참할 것 같아서요. 여자들은 다 그러니? 모르죠, 다른 여자들도 그렇대요? 응, 그치만 남자는 반대인 것 같거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어요. 그렇겠지? 네, 저도 직접 그 상황에 처하면 생각이 바뀔 것도 같고. 응. 그런데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가끔 내가 들어도 되는 이야기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다. 자의와 타의를 떠나 어떤 경로로든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게 되면, 괜히 죄스럽다. 나중에라도 그 이야기의 육체physical realization와 마주하게 되면, 시선을 대체 어디로 떨구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비슷한 맥락에서, 소설을 읽는 것이 요즘 많이 껄끄러워졌다. 이런 읽는 행위 또한 어떤 류의 관음이 아닌가 싶어서.

어제는 rainymood.com의 빗소리를 틀어두고 잠이 들었는데 축축한 꿈을 꾸지 않았다.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비가 와서 온 세상이 축축했다. 전차를 놓쳐서 실험실에 약간 늦게 갔다. 점심을 먹은 후로는 논문 교정 이외의 작업은 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두 시간 정도 일찍 집에 와서 세탁기를 돌리니 기분이 좋다.

조금 있다 자기소개서를 검사받으러 간다. 쓸 말이 없다. 건조된 옷들을 개키고 밥을 먹으며 생각부터 좀 해야겠다.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나를 전시해야 한다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비극에 시간을 섞으면 희극이 된다는 정설이 있다. 바싹 마른 옷들 사이에 묻혀서 잠이나 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