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했던 생각이지만 지금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는 사실은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 자아실현을 하겠다고 반 밖에 이해가 가지 않는 철학 책을 붙들고 이 시간까지 깨어있나 하는 것. 이번 학기 과목 중 제일 어려운 과목이 당연히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물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골때리는 과목이 요기 잉네.
쓰여져 있는 것은 분명 영어인데 이해가 안 간다. 이 사람들은 논문을 쓰면서 자기들이 무슨 말 하는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교과서에 쓰여 있기를, intrinsic intentionality가 있는 사람에게만 derived intentionality가 생겨난다고 하던데 역시나구나. 이런 글자 많은 논문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단어들이 derived intentionality를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흰 종이 위의 잉크 자국일 뿐이구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교수 오피스 아워를 가고 싶어도 수업이랑 시간이 맞물려서 갈 수가 없다. 아쉽지만 못 미더워 보이는 TA를 따로 찾아가야하나.
주문한 중국 음식을 기다리면서 지영 언니랑 도서관 카페에서 머리를 뜯으며 공부하다가, 뭐 공부하냐고 묻는 말에 내일 시험 있는 과목이 "Phil" of Mind라고 대답했을 때 Phil은 피식 웃었다. 밖에는 어느새 눈이 펑펑 와 있었다. 오랜만에 아주 긴 시간을 도서관 밖에 나가지 않고 공부했다. 원래 그러면 뿌듯해야 하는데 앉아있던 시간과 이해한 분량이 아주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되려 찜찜했다.
시험은 어쨌든 공부한 만큼 볼 테니까 조금만 더 보고 자야겠다. 마지막 보루로 필력이나마 발휘해야겠다, 라고 말하고 싶어도 발휘할 필력이 있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