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 사회가, 권력이, 타인이 - 우리들이 자유로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있는 부분을 이런 저런 이유들과 제약으로 묶어버린 뒤, 사실 이것들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힘들더라도 그냥 너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내어라, 하고 체념을 권유하는 일은 매우 빈번하다. 거기에서 우리가 그 구속을 비로소 납득하고 정말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한풀 꺾인 마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연쇄 작용처럼 자연스럽게, 약간은 초라한,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언제부터 자신이 그렇게 되었는지 기억해내지 못 한 채.
낯선 모습이 아니다.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 열 손가락은 넘게 존재할 것이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린 것이 비단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을 이기지 못 한 것 때문에 남에게 무조건 손가락질 받아야 하는 건 아니고 또 실제로 그렇게 비난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아를 쟁취하고 싶은 마음이 큰 사람들에 의해 우리들의 역사에 투쟁이라는 것이 존재해왔다. 그들이 타협과 포기 대신 선택한 것이 투쟁일 것이다.
뒤집어놓고 보면, 투쟁 또한 내가 아닌 다른 한 쪽의 (어떤 형태로든) 항복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백 퍼센트 옳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게다가 투쟁이 항상 옳은 결과를 낳는가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무모함과 무계획성에 본래의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투쟁했던, 투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용기 있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또한 무차별적으로 손가락질 받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학업 혹은 진로 면에서나, 정의가 부당하게 짓밟히는 현장에서까지.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는 여러 상황에서 우리는 고민한다. 멈추어 타협할지, 아니면 뚫고 투쟁할지. 이런 매 순간의 작은 고민들은 결국 하나의 매우 근본적인 고민으로 귀결된다. 평균적인 남들처럼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사회적인 표준을 사느냐, 아니면 가슴이 진정 뜨거울 때까지 투쟁하느냐.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결국 선택은 우리 몫이다.
시간의 돛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