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기는 한데 나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건지, 그냥 흐르게 마냥 두는 건 아닌지. 나의 마지막 자발적인 기억은 어디에서 멈췄는지. 지난 주? 내 생일 때? 지난 여름이던가? 아니면 지난 늦봄에 한국에 있을 때? 유럽에 갔을 때? 고3 때?
어느샌가 1학기 첫 시험 세 개가 끝났고 롯데는 4강에 안착했고 KISS-KSA 추석 이벤트가 다가오고 있고 예라도 미국에 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오늘 시험 끝나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사물놀이 관련 일 때문에 전화를 못 했다. 내일 해야지.
비록 내가 내 삶을 완벽하게 인지하지 못 하며 살아가고 있긴 해도 삶에 만족은 하며 살아가고 있다. 일단, 기숙사 싱글을 쓴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예전에는 잘 몰랐었다. 나는 오래된 기숙사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숙사 싱글보다 크기가 확실히 작지만 그래도 집이 아닌 곳에 작게나마 온전한 내 공간이 있다는게 너무 좋고 작아서인지 더 아늑하고 따뜻한 기분도 든다. Genna랑 Ally가 얼마 전에 내 생일선물로 준 로션 바의 딸기 향이 강한 편이라서, 가끔 오랫동안 방을 비우다가 돌아와서 - 가령, 아침 수업을 갔다가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쭉 있다가 새벽에 방에 돌아와서 - 문을 열면, 갇혀 있던 따뜻한 공기와 함께 딸기향이 확 풍겨오는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방 꾸민 사진을 올리려고 예전부터 벼르고 있었는데 기회가 잘 나지 않는게 슬프다. 곧.
그리고,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1학년 때보다는 좀 더 체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적응할 것들이 적어져서 그런지 아니면 확실히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들인지 조금 더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있어서 그런지. 단순하게 철이 늦게 든 것일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체계적으로 사는 것도 딱히 아니지만. 어젯밤 도서관에서 물리 시험 준비를 하다가 몸도 지치고 물리에 밝지 않은 나한테도 화가 나고 해서 나는 물리를 이 따위로 못 하니 살 필요가 없다는 소리만 넋두리처럼 늘어 놓으면서 내 주위 사람들만 괴롭히다가 계획보다 일찍 방으로 왔다. 원래 두 시간 정도만 자고 일어나서 다시 물리를 공부할 생각이었지만 두 시간 간격으로 자고 깨다가 결국 여섯 시간 꽉꽉 채워 자고 일어났다. 그래서 결국 오늘 있던 심리학 수업을 빠..지고 물리 공부를 마저 했다.
내가 이번 학기에 세운 계획이 언제나와 같이 참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수업 하나도 빠지지 말기"였다. 그런데 전에 감기에 심하게 걸려 금요일 수업을 죄다 빠지고 난 뒤로는 "아주 아프지 않은 이상 수업 하나도 빠지지 말기"로, 마치 동물농장에 나오는 걔네들이 그러듯이 내 계획을 약간 수정했는데 결국 한 달 만에 이렇게 내 계획에 금이 하나 그어지고 말다니! 그래도 다른 계획인 "옷 제대로 입고 학교 가기"는 그럭저럭 잘 지키고 있다. 오늘은.. 비록 후디를 입긴 했지만 시험기간이니까. 적어도 1학년 화학 퀴즈 있는 날에 그랬던 것처럼 잠옷 같은 옷을 입고 수업가진 않으니까.
건강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