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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몇 시간 전에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 전에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창문 넘어로 달이 보였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달도 움직인다는 걸 나는 이럴 때나 겨우 자각한다. 당연하지 않지만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많을지, 무섭다.

요새는 밤이 되면 날씨나 온도가 환상적으로 변한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 굳이 따지자면 약간 추운 편에 들겠는데 추운 정도가 내 마음에 딱 든다. 어젯밤에 있었던 AXE Lock-in에 갔는데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아서 나도 자리를 비우고 윗층에서 춤 연습을 하고 있던 성우랑 시덥잖은 얘기를 하면서 놀다가,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영화를 보던 나중에는 피곤해져서 몰래 일찍 나왔다. 기숙사로 곧장 돌아가려고 했는데 밤공기 때문에 허파가 깨끗해지는 것 같아서 좀 더 밖에 있고 싶은 마음에 quad로 갔다.

아무도 없는 밤의 quad는 내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인데, 나트륨등 때문에 노랗게 반짝거리는 quad에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 30분 정도 음악을 그냥 듣기도 하고 따라부르기도 하면서 미적대다가 기숙사로 돌아갔다.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성우는 아무도 니 노래를 못 들었길 바래, 하면서 농담을 했지만 (그리고 나도 아무도 못 들었기를 바라지만) 나는 아마 다음에도 또 아무도 없는 quad에 가서 궁상맞게 음악을 듣고 있겠지.

공부할 때 푸른새벽의 노래를 작게 깔면 왠지 집중이 더 잘 되는 것 같다. 공기가 차분해져서 그런가, 한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지금 막 동균이와 하다가 나온 말:

동균 - 내가 대구과고에 갔으면 인생이 어떻게 바꼈을까?
다은 - 지금보단 재미없는 사람이 됐을 것 같다
동균 - 왜?
다은 - 모르겠어, 뭔가 좀 덜 동균이스러워지지 않았을까

내 십대는 나를 얼마나 많이 만들어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