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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t hurts to breath around you, my lungs fill up with sea,"


미국에서 쓰던 노트북에 맞는 어댑터가 없어서 코첼라에서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에서 찍었던 사진도 아직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 나는 뭐든 정리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아빠 엄마는 정리왕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정리정돈 및 청소를 제일 잘한다. 내가 만지는 내 주변은 아빠 엄마의 정리의 정의에서 약간 벗어난다. 내가 늘어놓는 물건들에도 나름의 순서와 질서가 있지만 그게 모든 사람들의 기준에는 들어맞지 않으니까, 타협이 필요하다.



한국에 돌아와 며칠 동안 물가(부산항, 광안리, 이기대, 우도, 비양도, 협재, 해안도로, 쇠소깍, 용두암 근처)를 집중적으로 맴돌았더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어서 그런지,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신발을 벗고 걸어다니면서 바닷물을 밟았다. 부산 바닷물은 좀 차가웠는데 제주도 바닷물은 따뜻했다. 해초 같은 것들이 바닷물에 밀려와서 자꾸만 발에 감겼다. 물은 그야말로 너무 맑아서 좀 이상할 정도였다대학원을 바닷가로 가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양가에서 주입받은 섬사람 바닷사람 피는 못 속이네요. 떠나온 지금에야 말하지만 미시시피 강은 솔직히 너무 더러워서 물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광활한 것도 아니고. 내가 시카고를 좋아했던 것도 걔네들 호수가 그나마 바다처럼 커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요새 들어 다시 생각한다.


왕할머니 기제사에는 엄마 쪽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여서 맛난 거 많이 먹언? 네, 보말죽도 먹고 회도 먹고 한치물회도 먹었어요, 꿩고기도. 그래, 부산은 언제 올라가멘? 내일 아침에요. 제주도말은 들으면 알아듣겠고 나보고 해보라면 못하겠다. 저녁 먹기 전 이모할머니와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삼대가 나란히 앉아 왕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자기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가 제주도에도 다녀왔다던 교포 친구는 남포동에서 내가 사준 밀면을 먹으면서, 자기 아버지한테서 제주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제주도의 여성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강인한 여성상strong woman figure에 부합하는 것 같다며 신나했는데 나는 그때도 왕할머니 생각을 했다. 그 시절 여자 혼자 어떻게 딸 둘을 공부시켜 전부 대학에 보냈을까.


전문적으로 요리를 하시는 이모할머니는 손이 여간 크신 게 아니어서 제사음식을 이것저것 많이도 싸주셨다. 짐을 한가득 들고 부산으로 돌아온 첫날에는 일단 정신없이 낮잠을 잤다가, 일어나서는 거실에 앉아 영화 세 편을 봤다. 친구들이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아니면 대부분 서울에 있어서 살짝 심심하다. 시간이 빌 때 운전면허를 따두자. 서울에 올라가기 전에 면허를 딸 수 있으면 좋겠다.




+ sin fang - look at the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