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고 밖으로 나와 차를 기다리는데 바람이 사나웠다. 꼭, 공기가 한국 같아. 그러네, 길에 사람 없는 것만 빼면. 사실 우리가 한국에서 함께 밥 먹었던 건 딱 한 번 뿐인데.
먼 이야기는 반드시 멀고 멀게 돌고 돌아서만 나에게로 온다. 나와 이야기 사이에 엉망으로 구겨져있는 시간을 본다. 바라보는 대신 구경하는 내가 때로는 끔찍하고. 구기면 구길수록 거리가 좁아지는 길바닥이야말로 곧 기억이고 이를테면 추억이네요. 감정의 부재(不在)를 질책당한 이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감정이 생각을 앞설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으려면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제한적이다. 뛰고 있거나, 자고 있거나, 술을 마시고 있거나. 어제는 퇴근길에 손바닥만한 스케치북과 제일 싼 색연필 세트를 사서 세 시간 동안 낙서를 하고 있었다. 손이 아팠다.
나는 내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네가 그런 표정을 짓는게 마음에 들어서 일부러 그런 말만 해댔다. 지나가듯 후회한다.
물리 수업에서 우리는 이따금 마찰력을 영(0)이라고 가정하고 계산식을 풀었다. 모든 것이 너무 매끄러웠다. 숫자들이 껄끄럽게 깔끔한 척을 해대서 웃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고전역학 이론 바깥의 세속적인 현상이니까. 모든 통과는 그렇게 빠짐없이 마찰을 수반해 결과적으로 아프고,
나의 생각과 염려가 나를 사방에서 감시하고 있어서 안심이라는 말은 그러나, 지나면 지날수록 나에게는 너무나도 확실한 상처였다.
그때 네가 차 트렁크에서 내 가방을 꺼내주고 평소보다 조금 더 길고 단단히 안아줄 때. 너의 어깨에선 내가 네 집에서 맡았던 냄새가 났다. 너는 포옹을 풀기 전에 나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조심히 다녀와, 했다. 그제야 남의 체온이 너무 오랜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너에게서 떨어지기 힘들었다고 여기에 고백한다.
이것이 나를 구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iron & wine - such great hei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