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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 wonder if i'm allowed ever to see,"


Uta Barth의 사진을 처음 봤던 건 작년 여름. 그때 나는 상황에 지쳐서 모든 걸 팽개치고 시카고로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조금씩 울다 말다 했다. 한밤중에 버스에서 내렸는데 6월인데도 끔찍하게 추웠다. 그 다음 날도 추웠다. 수화랑 잠바주스를 마시면서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미술관에 들어갔는데 마침 Uta Barth의 사진전이 진행 중이었다. 사진들이 빛으로 너무 투명해서 생경했는데 수화는 사진들이 별로였는지 뭐냐 이게, 나가자, 했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영화를 찍으면 오프닝 시퀀스는 이렇게 해야지,라고 몇 년 전에 생각했던 장면들과 똑같은 사진들이 있어서 몰래 놀랐다. 그 주말 이후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왔고 날은 더웠다. 어떨 땐 학교 미대 도서관에 들어가 이방인처럼 두리번거리다가 Uta Barth의 도록을 꺼내 보곤 했다. 날이 추워졌고, 그 이후로는 그 도록을 구경하러 간 적이 없지만 바닥이나 벽에 떨어지는 햇빛의 광선을 볼 때마다 아직까지도, 여전히, 반사적으로 기억한다. Uta Barth의 사진들이 걸려 있던 전시실과, 그곳의 유리문과, 호수 위를 지나가던 건물 그림자와, 미대 건물 계단에 떨어지던 여름 공기와, 빛이 잘 들지 않던 북향의 내 방과,


출근할 때마다 Uta Barth 생각을 한다. 수 분 동안 나는 현관 앞에 떨어지는 차가운 햇빛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그건 다, 출근할 때 나에게 차를 태워주는 친구가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매번 2-3분 늦게 나오기 때문인데, 만날 시간을 정하려고 내가 아침에 전화를 걸면 친구는 졸려서 미칠 것 같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매번 그러는 게 이상해서 너 혹시 알람 안 맞추냐고 물었다. 이제는 안 맞춰, 네가 전화로 깨워주니까... 핸들을 잡고 중얼중얼. 만약 내가 늦잠 자서 너 못 깨우면 어떡해? 그럼 우리 둘 다 지각하는 거지, 라면서 피식. 거 봐, 그러니까 알람 맞춰? 알았어, 아마도...


하지만 친구는 여전히, 매번 졸려서 미칠 것 같다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핀잔을 주면 나 자꾸만 늦게 자서 수면 사이클이 엉망이거든, 그러고는 시끄러운 음악을 튼다. 그러다 한 번은 노래가 랜덤으로 넘어가더니 Jonsi의 노래가 나왔다. 나 이 노래 아는데? Jonsi 좋지. 뭐야. 응? 의외구나? (이 말에, 신호를 받고 속도를 줄이다 말고 크하핫 웃는다) 왜, 내가 맨날 하우스나 트랜스만 듣는 줄 알았어? 응. 허, 참, 편견이네. 그렇지 편견이지, 너 맨날 그런 것만 트니까... 우연이겠지만 그 다음부터 친구는 피아노가 잔잔하게 깔리는 음악도 틀기 시작했다.


바쁜 일들이 한차례 지나가 이제 숨 좀 돌릴까 싶었는데 어제부터 조금씩 아프기 시작했다. 아예 끙끙 앓아 눕는 거라면 어떤 조치라도 취하겠는데 종일 미열만 있는 거라 뭐 딱히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어제 Chelsea랑 나가서 맥주 마시기로 했던 것도 취소했고, 오늘도 퇴근하자마자 씻고 저녁을 먹은 뒤 침대에 누워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뒹굴거리다 타이레놀을 꺼내 먹었다. 미열은 여전하다. 지난 며칠이 늦가을 답지 않게 굉장히 따뜻했는데 그 때 남아돌던 온도가 내게 고여 떠나지 않는 것 같다. 어제는 내가 자는 사이 비가 왔다 갔다. 날이 다시 추워지고 있다.


이번 주말에 넉 달 만에 시카고에 간다. 올해 들어 세 번째다. 그리고 어쩔 줄 모르게 벌써 12월이다.



 


+ jónsi - torna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