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인을 따라 처음으로 핫 요가를 하고 나와(나는 내 몸에서 물이 그렇게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파네라에 가서 늦은 저녁으로 샐러드를 주문했다. 서서 음식을 기다리며 어떤 대화를 나누던 도중 로레인은 '모른 척'이라는 말의 뉘앙스가 시적poetic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단순히 무시ignore하는 게 아니라 알지 못함을 가정한다pretend not to know는 것이 아니냐면서. '보고 싶다'라는 말도 풍미가 더 깊다고 했다. 나는 로레인에게, 그 말이 단순히 그리움I miss you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나는 너의 형태를 보기를 소원한다I desire to see your figure로 들리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로레인은 그런 것 같다고 대답하며, 나에게 한국어가 영어보다 더 시적이지 않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했고,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이라 학생들이 학교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번 주 내내 밥 약속이 잡혀 있다. 작년 여름과 비슷한 꼴이다. 지난 달에는 더위가 그렇게 기승을 부리더니 이제는 날이 너무 시원해져서 당황스럽다. 그렇게 내내 아프게 더웠음을 돌아오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그게 왠지 조금은 속상하다. 나는 이미 여름이 끝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자꾸만 이번 여름을 조용히 복기하고 있다. 비와 천둥과 번개가 적었던 것을 기억했다. 대신 해가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같이 일하는 여자애는 줄곧 실내에서만 일하느라 비타민 D 결핍증을 진단 받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차 없이 걸어 다니며 햇빛을 쬐기 때문에 식물성을 잃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런데 애초에 우리에게 식물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나?
다들 아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생활과 감정에 있어서 곧잘 취약했다. 취약해왔고 앞으로도 취약할 것이다. 이 일상성을 차라리 아주 낱낱히 자랑 삼아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요동치는 나의 세계를 알아달라고 남의 바짓가랑이 붙잡고 비는 꼴이지만 어렵지 않게 납득할 만한 불행이라고도 생각한다.
속죄하기 전까지는 어떠한 속내도 쓰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단 하나의 속죄도 이루어지기 이전에 속절없이 쓰고 만다. 다만 개인적인 언어가 개인적인 죄조차도 되지 않기를 빈다.
+ little dragon - tw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