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밥을 먹다 말고 자기가 내성적이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나도 꽤 내성적인데, 걔는 진짜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 내성적인 것 같아."), 나는 그게 농담인줄 알고 음식 씹던 걸 멈췄다. 너는 너무 싱싱해서 종종 떠들썩하고, 요란한 걸 좋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하고. 나는 거기에 자주 웃고 손뼉을 치지. 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서 되물었고("네가 내성적이라고?") 그는 눈을 깜빡이며 그렇다고 했다. 화제가 바뀌었다. 그는 자꾸만 농담같이 들리지만 사실은 농담이 아닌 이야기들을 농담처럼 풀어냈고 나는 그때마다 음식을 씹었다 말았다 했다. 후식처럼, 우리는 서로의 인생이 망해갈 수 있는 경로에 대해 수학적으로 이야기했다. 귀여운 자학 수준이던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꾸 헛웃었다. 가보지 못한 곳들과 갈 수 없는 곳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집으로 가자며 건물을 빠져 나오다가, 생각이 났다. 사실은 한 시간 동안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알겠다며, 네가 왜 널 내성적이라 했는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다 그런 결론이 났냐고 그가 재차 물었다. 내 진짜 근거들은 주춤거림, 우두커니 멈춰 있던 오른팔, 단단한 팔짱, 다문 입, 깜빡이지 않는 눈, 그러다 가늘어지는 눈, 의식적으로 한 템포 느린 미소, 그런 것들이었지만 그 모든 걸 열거하기에는 걸음이 얼마 남지 않아서 내가 그애를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몇년 전의 순간들을 대충 들먹였다. 그것들도 아예 틀린 증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동의한다는 듯 손바닥으로 눈가를 한 번 쓸며, 웃었다.
오늘은 학부생 실험을 잠깐 도와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실험을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데이터 정리에 많은 시간을 썼다. 중간에 식곤증 때문인지 졸려와서 논문을 들고 휴게실로 가 모양만 라떼인 라떼를 뽑아 먹었다. 내일이 휴일이라 그런지 다들 조금씩 일찍 퇴근하는 분위기였다.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기 전 화장실에 들렀고 거울 앞에 잠시 서 있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옷깃이 있는 원피스를 입고 출근했는데, 그 위에 가디건까지 걸치니 화장실 거울 속 내 모습이 왠지 간호사같아 보였다. 고등학생 때 집 근처 의료원에서 봉사를 할 때 병동의 한 간호사 언니는 나와 단둘이 간호사실에 있을 때 절대, 간호사는 하지 말라고 했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장래희망이 간호사였다는 말을 할까 하다가 관두고는 저런 지친 표정의 그녀도 행려병동에서 정맥주사를 놓다가 뺨을 맞은 적이 있을까, 그런 상상을 했다. 나처럼 졸업하고 실험실에 연구원으로 취직한 아이는 나와 같이 점심을 먹다가, 몇년 전 들었던 물리 실험 수업의 마지막 날 실험 조교가 학부생들 앞에서 자기는 대학원에서 끔찍할 정도로 행복하지 않다며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성우는 사실 자신이 건축을 하냐 마냐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건축으로 무얼 할 수 있냐가 더 중요한 거라며. 부러웠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나도 뭔가 비슷한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할 수 없었다. 객관은 훌륭하지만 그 하나에 기대기에는 난 너무 외로우니까. 주관은 다정하지만 때때로 유약하니까. 그래서 객관과 주관이 평화롭게 병행하는 삶이 내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거라고. 그때 그런 이야기를, 나는 왜 하지 못했지? 기억이 나지 않았나? 귀찮았나? 아니면 또 끝도 없이 졸렸나? 어쨌든, 나는 내가 과학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과학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과학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없거나, 아직 모르겠거나, 사실 알고는 있지만 너무 주관적인 이야기이므로 발설하지 않는다. 부모님 각자의 전공 분야도 당시 당신이 생각한 최고의 선택지는 아니었겠지. 피는 어디 가지 않는다. 나는 타협을 타고 났다. 이것도 은총이라면 은총이고 저주라면 저주겠다. 어느 쪽이든 큰 상관이 없다.
나는 그렇게 화장실을 나서다가 들고 있던 파일을 떨어뜨렸다. 바닥에 논문이 유리처럼 흩어져서 나는 멍청하게 발 근처를 바라보고 있다가 쭈그리고 앉아 종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세상이 나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