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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간호사는 내 팔의 멍이 자기가 찌른 바늘



/ Sun Glitters - High /



간호사는 내 팔의 멍이 자기가 찌른 바늘 때문에 생긴 거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지난 번에는 왼팔이었으니 이번에는 오른팔에 검사를 하자며 투베르쿨린을 내 팔에 주사하다가 이 멍 좀 봐, 최근에 피 뽑았어요? 하는 것이었다. 당신이 지난 주에 내 피를 뽑으려다 실패하지 않았냐고 묻자 웃으며 어머 내가 그랬나 미안, 하지만 나는 이 검사를 너무 여러 사람에게 해주니까요, 라면서. 전혀 멋쩍어 보이지 않는 미소였다. 건물을 나서자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셔서 어지러웠다. 나는 탈지면에서 알콜기가 완전히 가실 때까지 팔을 붙잡고 있다가 실험실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바짝 마른 탈지면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죄를 지은 것처럼 양팔이 얼룩덜룩했다.


대학 신입생이던 시절 심리학 입문에서 심리학자 콜버그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stages of moral development을 배웠는데, 콜버그는 인간이 도덕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결정을 내리는 기준을 바탕으로 사람의 발달 단계를 일곱 개로 나누었다고 한다. 가령 유아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혼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행동을 하고 그건 가장 낮은 수준의 발달 단계인데, 그 다음 단계들을 여차저차 지나 제일 높은 수준의 단계에 도달하면 인간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윤리와 질서를 기준으로 도덕적 판단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조금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교수님이 보여준 그래프였는데, 보통의 인간은 법이나 규율 등등으로 인해 도덕적 판단을 하는 4~5단계에서 발달을 그칠 뿐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해석이었다. 그렇다면 그 이론 안에 마지막 단계는 왜 만들어놓은 거지? 나는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흔히들 일컫는 성인(聖人)들이 그런 범주에 드물게 빠지지 않을까 결론짓게 되었고... 이 이야기를 지금 왜 하는가 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칠 생각은 않고 남들에게서만 열심히 달아나려는 모습들을 본다. 사람들은 자꾸만, 쿨한 것과 배려없는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게 왜 어렵지? 보통의 지적 능력을 가졌다면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법도 한데. 지적 수준이 그에 닿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도리가 없지만 솔직히 '그 정도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양쪽 모두가 알고 있다면 이건 더 이상 지적능력의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린다. 나아가 사람으로써의 질(質)에 관한 문제가 되어 버린다는 거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궤변과 자기변명에 능한 편이지만 그보다 몇 술은 더 떠서 아예 그 변명의 허물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이들이 있다. 사실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누구나에게 주거의 자유와 권리는 있겠으니까. 하지만 그런 부실함 속에 사는 나태함으로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따위로 유지비를 청구한다면 그건 도를 넘는 일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모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배우고 깨닫고 알면 만회라도 되니까 그게 차라리 나은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은 때때로, 나쁘다. 개선의 여지마저 없다면 그건 좀 더 자주, 나쁘다. 왜 자기가 그 정도 수준이라고 사방에 광고를 하지? 내가 그런 집에 사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가출을 한다.


그냥 쉽게 말해 내 앞에서 내 사람 욕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려면 스마트하게라도 하던지. 그럼 화술을 지켜보는 재미라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이미 뻔하게 알고 있는 지겨운 화법으로 나를 설득하려고 하면 나는, 지루해진다. 차라리 나를 욕하면 적어도 덜 지루하기라도 하겠지. 나는 어차피 누구의 편에 설 마음도 없는데. 나는 언제나 상황 편이다. 그런 나를 모르고 자꾸만 되도 않는 동의를 구하려 내 얼굴을 기웃거리는 모습에 하품이 나와서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만 빙빙 돌렸다. 그건 대체 무슨 용기지? 용기도 아니라면 당신은 아직도 유아기에 있어? 귀가 웅웅거려서 전신에 열대야가 스민 것처럼 나는 너무 피곤했다. 내가 당신보다 낫다고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있을수록 못 들어주겠다는 마음 뿐이었다. 혼낼 마음도 없었다. 그저 돌이킬 수 없게 되지 않아버렸나 생각했다. 앞으로 수동적인 상종 외에는 당신과 하고 싶은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일어서자고 먼저 말한 것도 나였다. 그렇지 않아도 섭씨 30-40도를 넘나드는 요즘 서쪽을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 퇴근길은 더욱 고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