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igur Rós - Varúð /
하늘에 정전기가 일 때 시규어 로스의 Varú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끔 번개,까지는 아니어도 카메라 플래쉬가 연달아 터지듯 밤하늘이 천둥 없이 아주 번쩍일 때가 있는데 기정이랑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자던 재작년 여름에는 그게 굉장히 심해서 한밤중에 나 혼자 종종 깨곤 했다. 꽤 오래 그런 하늘을 본 적이 없었는데 도서관 카페에 있다가 잔뜩 스트레스만 받고 집으로 돌아가던 밤의 하늘이 오랜만에 번쩍였다. 어떤 경로로 우연하게 Valtari의 리크가 생겨 있던 덕분에 Varúð를 들으며 올려다 본 하늘은 굉장했다. 세상이 우아하게 멸망하기 직전 같았다. 집에 돌아와 때맞춰 통화를 하게 된 훈제에게 내가 방금 시규어 로스를 들으면서 집에 오다가 아주 멋진 걸 봤는데, 다소 흥분해서 떠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제 퇴근 전철 안에서 내 앞에 서 있던 여자의 목 언저리를 보았다. 보려고 본 건 아니고 손에 책을 들고 글자를 쫓던 내 시선의 연장선상에 그녀가 있어서 그랬던 건데, 흰 피부 위에 가늘고 붉게 긁혀 부어 있는 선이 있었다. 사람의 것 같지 않게 아주 눈에 띄게 도드라진. 나와 피부가 같구나. 지난 달 초 세포학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토할듯 기침을 하며 학교 보건소에 갔을 때 내 목 안을 들여다 본 의사는 피부묘기증이 있다는 내 말에 그럼 그렇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건 감기가 아니라 알러지라고 선언했다. 목구멍 안의 군데군데가 알러지성으로 붉거든요, 환자분 피부도 긁히면 그렇지요? 마침 세포학 기말고사 범위에는 면역세포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어떤 이들의 면역세포는 그 표면이 아주 얇은데, 그런 경우 피부의 약한 자극에도 면역세포가 부적절하게 터지며 히스타민을 뿌려댄다고. 그로 인한 결과는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외관상 몹시 신경이 쓰인다면 안티히스타민을 복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내 증상의 매커니즘을 늦게나마 배웠지만 그건 시험에 나오지 않았고 나는 시험을 치는 내내 기침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기침은 하지 않지만 피부는 갈아치울 수도 없다. 여름이면 아무래도 피부를 드러내게 되니까 신경이 쓰인다. 아주 예전 어느 여름날 주유를 하다가 엉망으로 긁혀 있는 내 팔을 보고 깜짝 놀라며 왜 그러냐고 묻던 친구가 있었다. 대충 설명하고 보기와 달리 아프지는 않다고 말해주자, 망설이다가 내 다른 팔에 손가락으로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써보기도 했는데. 피부가 잠시 후 화끈대며 서서히 글자들을 뱉어내자 그애는 인두로 자기 이름을 지져 넣은 것 같다며 불안한듯 웃었다. 지금은 그애와 친구도 아니게 되어 버렸지만. 어쨌든 탱크탑을 입고 있던 그 여자는 목 아래의 붉은 사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밝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금요일이어서 기뻤던 건지. 그래서 안 보려고 했는데도, 자꾸만 보게 되었다.
일은 무척 바쁘고, 고되기도 하지만 할 만하니 하고 있다. 재미가 없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체력이 조금 걱정되는데(체격과 체력은 비례하지 않으니까 체격이 좋아봤자다) 얼른 운동을 하고 볼 일이다. 출퇴근 도합 15분 자전거 타는 걸로는 해결이 안 될 부분이다. 그런데 운동 이전에 아이팟이 고장나서 애가 탄다. 나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는데 여행 이후로 아이팟이 재생이 안 된다. 리퍼를 받거나 하고 싶지만 그럴 시간적/재정적 여유가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생각보다 쉴 시간이 별로 없다. 이 기간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나 반성한다. 어떻게 보면 학교 다닐 때와 비슷하거나 더 빠른 템포로 살고 있다. 일 년 단위로, 혹은 여름이 끼어있어서 그보다 더 작은 단위로 거처가 바뀌는 일은 좀 귀찮지만 나쁘지는 않다. 부산으로 돌아가면 내가 12살 때부터 살던 방이 가구배치도 바뀌지 않은채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늑해지니까. 적어도 이번 여름에는 누구 집에 얹혀 지내지는 않으니 다행 아닌가. 지난 날들 집세도 받지 않고 자기들 집에 나를 살게 해주었던 이름들을 생각하면 고맙기도 하고, 아버지가 이름을 잘 지어주셔서 이렇게 인복이 많나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은혜들을 생각하면 막 살면 안 되는 것이다, 막 살고 싶어도. 쉽게 감사하는 마음을 나는 해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적어도 절반 이상은 성실하게 살고 있기를 늘, 의식적으로 바란다. 여기서 내가 어떻게 내 나름의 터전을 꾸리고 사는지를 확인하고 귀국하신 엄마는 후에 전화로, 내가 혼자서도 너무 빼곡하게 살고 있어서 끼어들 틈이 없어 보인다며 울먹이셨다. 그게 좋다는 건지 나쁘다는 건지 알기 어려워 나는 그냥 그걸 다른 대륙에서도 잘 살고 있어 보인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나는 늘 그렇듯 되려 매정하게, 따라 울먹이지도 않고 대화를 이었다. 이상하게도 엄마 앞에서는 잘 허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