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gwai - I'm Jim Morrison I'm Dead /
얼마 전에야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걸 어떻게 여태 모르고 살 수 있었냐는 내 질문에, 늦게나마 그 딱지가 나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 같지 않니?라며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핸드폰을 만지는 것이었다. 화제전환은 너무 빨라서 많은 단어들은 사람들과의 제각각인 부딪침, 다음날 저녁과 밤의 계획, 자기가 거절한 여자들과 자기가 끌리는 여자들의 특징들을 돌고 돌더니 나중에는 만성적인 불면증에 대해서까지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멜라토닌을 여러 알 삼키고 나서야 생각들을 잠재우고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하길래 나는, 그렇게나 많이 먹어야 잠이 오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술을 줄이는 건 어떠냐고 물었지만 술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면서("게다가 멜라토닌은 몸에서 원래 나오는 물질이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거 권장 복용량 이상 아니에요? "맞아, 그치만 몸에서 원래 나온다니까?"). 연애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는 와중 노트북 배터리가 많이 줄어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며 가방을 챙겼다.
귀가하는 길에 오랜만에 동생과 통화를 했는데, 어깨가 아파서 전화기를 귀 옆에 들고 있을 힘이 없어서 스피커폰을 켜두고 공중에 외치듯 말을 뱉으며 밤길을 걸었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안부 이상의 통화여서, 그간 누나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한 죄책감에 나는 자꾸만 잔소리를 해댔다. 아무래도 거리가 멀어서 동생이 자꾸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해 무슨 말을 하는 거냐고 재차 물었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신호를 기다리던 아이가 허공을 향한 내 독백에 놀라 한 번 뒤돌더니 이내 시선을 돌리곤 했다. 거리를 건너 집으로 들어가는 그 짧은 거리에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아서 자주 둘러보았다(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옷을 갈아 입고 침대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볼품없는 이력서를 고치다가 또 새벽 절반쯤이나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날이 다시 추워져서 그런지 발이 시려서 수면양말을 신은 채였다.
아버지가 정치하시는 사람들이 극소수이나마 학교에 있어서, 몇몇은 개표 결과를 논할 때 목소리를 낮추었다. 나는 누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뉴스에 나온 당선자 사진을 보다가 한 사진 속에서 몇년 전 학교를 졸업한 언니를 발견하고는 약간 놀랐다. 인터넷의 익명들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선택한 자 입을 다물라고 했다. 나는 학교에 다니며 일도 한다. 한인이 많지 않은 이 도시에서는 재외국민 투표를 하려면 옆 도시로 가기 위해 기차를 왕복 열두 시간을 타야 한다. 어차피 부산의 내 지역구 당선자는 재선이다. 나는 딱히 떠들고 있지는 않지만 방관 대신 주시하고 있다. 내가 좌우를 조용히 싸움 붙이고 중립을 자청하며 지켜보기만 한다며 후배는 누나, 치사하니까 반성하라고 놀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을 조심하라고 하셨지. 박사님도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가르치신다. 언젠가의 음절과 마침표가 나도 잊고 지낼 시간을 살아낸 후 결국에는 나에게 오도록 설계되어 있는 삶임을 안다. 일상이 되었든 학계가 되었든 어떤 스탠스를 지킨다는 것의 무게를 느끼도록 배운다. 거의, 중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동기가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에게, 하루짜리 부산 여행에 관한 조언을 묻고 있길래 "기차 타고 부산역에 내려서 그 근처에서 돼지국밥을 먹고 그 앞 지하철역에서 신평행 지하철 타고 토성동에 내려서 마을버스로 감정초 앞까지 가서 감천동 문화마을을 한 번 돈 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와 국제시장에 진입, 팥죽을 먹고 좀 돌다가 보수동 헌책방 골목도 보고 남포동으로 넘어가서 씨앗호떡을 먹고 더 돌아다니다가 자갈치 가서 횟감을 좀 구경한 뒤 해 떨어질 때쯤 혼자 패기 넘치게 꼼장어에 반주로 소주를 먹은 다음 부산역으로 돌아가 알딸딸하게 기차 타고 귀가"하라고 종합 조언해주었다. 그 친구는 웃으며 유학생의 대리만족을 위해 하루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고. 거처가 경계를 넘나드는 지금 부산이 그리운 건... 절반쯤 맞다고 해두자. 그 동기에게 한 조언이, 기차만 제외하면 내가 지난 겨울에 했던 짓들과 비슷해서 방학 때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방학 때의 사진을 뒤졌다. 친구들 사진을 보다가 두준이가 나왔다. 이번 학기에는 꼭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또 일정이 맞질 않았다. 나는 정말 잔뜩 미안한 마음이다(내가 말 안 해서 몰랐지 너, 말해도 안 믿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