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g Raiders - Sunlight /
메트로를 타고 의대로 가면서 졸 뻔했다. 그렇게 쭉 자버리면 위험한 동쪽 동네로 가버리니까, 눈을 비비면서 신나는 음악만 들었다. 껌도 씹었다. 오늘은 일이 약간 길어져서 테크니션 언니와 함께 실험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의대 캠퍼스라 그런지 주변에 이런저런 병원들이 많은데 소아전문병원 식당이 실험실과 가까워서 가끔 거기서 밥을 사먹곤 한다. 학교로 돌아와서는 약간 늦게 스크리닝에 들어가서 맨 뒷줄에 앉아 허우 샤오시엔의 영화를 보다가 좀 졸았다. 도서관에서 페이퍼를 쓰다가 잠옷을 입고 싶다는 생각에 짐을 챙겼는데 그걸 본 조쉬 오빠가 왠일로 벌써 집에 가냐고 했다. 그치, 그렇지만 오늘만... 밖으로 나왔을 땐 낮의 잔열로 공기가 텁텁했다. 아침 일찍 입고 나온 소프트볼 점퍼 때문에 더 더웠다, 그런데 그걸 벗으면 또 추워서 그냥 입고 있었다. 아침에는 정말 추웠는데. 그렇지만 난 자고 일어나면 항상 춥다고 생각하니까.
버릇은 너무 뻔해서 나는 이제 고개를 들지 않고도 그걸 필사할 수준이 되었는데, 이런 나를 혹시 알고는 있는지. 많은 공식과 미신이 생겼고, 피사체 없이도 다음 장면을 정확히 인화할 자신이 있다. 사람의 말투가 결국에는 여전하다는 걸 눈치채도 웃지 않을 수 있어. 어감이라는 건 테두리를 미리 선포하는 일이니까, 역시나 웃지 않을 수 있지. 뭘 할 수 있다, 그럴 수준이다, 문장을 자꾸만 이런 식으로 끝맺으니 장기자랑하는 기분이지만 그게 사실인 걸 어떡해.
오늘은 시험을 치면서 손톱을 뜯다가 피가 났어. 예쁘게 불행할 거야. 버릇의 뼈는 쉽게 삭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