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eter Von Poehl - The Bell Tolls Five /
지난 주말에는 날씨가 봄날처럼 평화로워서 마음도 아늑할 수 있었다. 주말 직후에 있었던 퀴즈 공부를 했던 것 이외에는 소프트볼 연습도 하고 버블티도 마시고 여럿이서 숲공원으로 가 잔디밭에 앉아 있기도 하고 바빴어서 몇 주 동안 못 끝내고 있던 시집도 다 읽었다. 밤에는 친구들과 누군가의 집에 가서 맥주를 마시고 잼도 했다. 나는 반 년 동안 연주하지도 않은 카시오톤을 들고 갔는데 힙스터처럼 차려 입은 집주인과 그녀의 친구들이 몰려와 악기를 한 번씩 만져보았다("잇츠 쏘 빈티지, 클로이!"). 누군가는 하모니카를 누군가들은 키보드를 또 다른 누군가들은 기타를. 어떤 한 아이는 이름도 모르겠는 악기를 가지고 놀았고 나머지들은 사방을 두드리며 소리를 냈다. 구석에 앉아서 뚱땅거렸던 숱한 멜로디 중 하나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들 자연스럽게 섞여서 좋았던 그 기분만 잔류한다.
주말의 한 부분에서는 친구들과 심각하게 떠들기도 했는데, 발단은 수능 쳐보지도 않은 내가 누군가에게 수능이 어떤 형식의 제도인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서... 분명 우리는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이 대학에 공립고 나온 애들 얼마 없어." "너 공립 나왔잖아?" "근데 난 롱 아일랜드 살잖아...") 대화는 산불처럼 번져서 어느 순간 우리는 사회의 변두리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마도 친구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브루클린 후드 출신 남자와 연애하면서 봤던 못 볼 꼴들을 열거하면서 시작된 이야기 같은데. 몇달러 하지도 않는 임신테스트기를 살 돈이 없어서 진열대에서 테스트기 하나를 뽑아 들고 매장 화장실로 숨어 드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 심지어 그건 친구가 우리 학교 바로 옆 월그린 알바생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는 이야기. 다른 친구는 재활원rehab에 처음 일한 날 마음이 무거워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전화를 하며 흐느껴 울었다는 이야기. 재활원의 아이들이 퇴소하면 그 일들은 필히 재발한다는 이야기. 불행이 불행을 낳게 된다는 이야기("이건 좀 다른 말이지만 그래서 난 낙태 찬성pro-choice이야,"라고 그녀가 말했다).
그때 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가 내려가는 시간이어서 거실을 약하게 채우는 빛이 좋았다. 나는 오후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예진이가 전날 밤에 친히 집으로 가져다 준 육개장을 데워 밥을 말아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Shit's happening out there and we just don't know about it. 나는 국물이 빨갛게 말라 붙은 그릇을 부엌에 가져다 놓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뿐이었다.
그때 나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해가 내려가는 시간이어서 거실을 약하게 채우는 빛이 좋았다. 나는 오후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배가 고파서, 예진이가 전날 밤에 친히 집으로 가져다 준 육개장을 데워 밥을 말아먹으며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맛있었다. 이렇게 맛있어도 되나? Shit's happening out there and we just don't know about it. 나는 국물이 빨갛게 말라 붙은 그릇을 부엌에 가져다 놓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뿐이었다.
재작년에 도서관에서 여성학 수업 교재였던 Half the Sky라는 책을 며칠 읽었다. 읽다가 여러 번 울 뻔 했다. 책을 더 읽기 어려워서 숨을 고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다들 너무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사람들은 각자의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거나 쿠키를 조각내어 먹거나 했다. 벽 한 쪽이 통유리라 내 자리까지 들어오는 볕이 좋았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웃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 어떤 여자들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투석형에 죽어가고 군인에게 자궁이 뜯겨가는데 나는 그냥 모든게 편했다. 나를 위협하는 환경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냥 불평하며 살고 있었다.
내 불평이 남의 간절함이고 감사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의 경로는 버거운 것이다.
결국에는 살면서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에 따라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나의 문제는 행동의 결여인지. 그래서 수화는, 너의 생각들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나를 조용히 혼냈나보다. 그렇지, 누구든 의식과 판단만은 충만하다. 하지만 "절대 이 의식들을/가득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이병률).
원래는 어제 논문 초록을 제출해서 기분이 좋았다는 말을 쓰려고 했는데, 완전 다른 이야기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