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OoOO - Burnout Eyess /
부산은 춥지가 않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최근 이사 온 학교 후배와 어젯밤 동생을 통해 통화하며 그래도 부산은 별로 안 춥지? 라고 물었을 때에는 전 좀 추운데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생과 후배는 서면에 있었고, 나 또한 서면에 있다가 집 근처로 막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얻어 온 더위가 가시지 않아 목도리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춥지가 않다. 연신 춥다는 라디오의 말에 옷을 두껍게 입고 다니다 보면 문득 숨을 쉴 수가 없다. 목도리고 코트고 뭐고 전부 다 땅바닥에 팽개치고 싶어진다. 특히 자동차나 지하철에서는 호흡에 집중하고 싶어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한다. 소리에 머리가 아파와서 모든 것이 진공 상태였으면 한다. 그런데 진짜 그러면 질식하겠다는 모순.
어제는 외박을 나온 철현이를 만났고, 커피를 마시다가 남자 장갑을 사러 서면 구석구석을 돌았다. 수확은 없었다. 남자 장갑은 아예 없다는 곳이 많았고 있더라도 정말 별로인 것들만 팔았다. 철현이 말대로 정말, 부산은 덜 추워서 남자 장갑을 안 파는 건지. 식사시간에 맞춰서 민재가 합류했고 셋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셨다. 공짜라는 생일주를 주문하자 민재는 그제야 철현이의 생일을 축하했다. 다소 일찍 헤어지면서 철현이는 내가 예전에(아마도 내 생일선물로) 부탁했던 책 세 권을 건넸다. 나는 장갑은 못 사줬어도 민재와 함께 술을 샀다.
오늘 오후에는 치과에 갔다. 사랑니를 뽑아야 할 것 같다시길래 오늘 뽑아도 괜찮다고 했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마취하고 발치.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이루어져서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탈지면을 악물었다. 마취 때문에 아무 느낌이 없었다. 몇 시간 후 마취가 풀리고도 별로 아프지 않았다. 처방 받은 진통제를 먹고 한강 소설의 마지막 장을 읽었다. 어제 철현이는 책을 넘겨주며 한강의 책은 다 못 읽겠더라고 했다. 문체가 거슬린다면서.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가끔 글이 심하게 습해서 멀미할 것 같았지만 그건 타고 있던 차가 흔들려서였던 이유가 더 크겠다. 한강의 다른 책도 읽어 보고 싶다.
그런데 요 근래 느낀 거지만 한글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줄었다. 지금도 느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확실히 더 빨리 읽었는데. 그렇다고 영문 읽는 속도가 극단적으로 늘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뭐 하나 나아지는 것이 없다. 누군가 그랬다. 모든 평준화는 결국 하향평준화라고. 나는 누가 그 말을 들을까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