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희정 - 끈 /
미국은 정말 멍청한게, 맨날 말로는 환경을 사랑하자면서 여름날 건물 안에서는 에어콘 바람을 말도 안 되게 뻥뻥 틀어준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는 현미경이나 다른 기계들이 많으니까 냉방이 각별히(?) 잘 되는 걸 좀 봐준다 치더라도, 바깥 더위와 건물 안 추위의 차이가 날이 더워질수록 더욱 견디기 힘들게 격해진다. 덕분에 지난 주 초에는 냉방병인지 감기인지에 걸려서, 과장 조금 보태서 닷새 정도를 앓았다. 물론 첫 이틀 정도만 열 때문에 못 견디게 아팠던 거지만 그 여파가 길어서 주말까지 목도 붓고 머리도 아프고 했다. 지금이야 다 나아서 팔팔하지만 지난 주에 모처럼 있던 저녁약속들도 줄줄이 다 취소해버리고, 다소 서러웠다.
핸드폰은 아직도 없다. 사려고 할 때마다 여러가지 사정이 생겨서 못 사고 있는데, 그 때문에 "다음 주에는 꼭 핸드폰 살게"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이제 철현이는 자기가 미국을 뜨기 전까지 내가 핸드폰을 사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을 정도다. skype 덕분에 그럭저럭 버티시던 엄마는, 동생이 "모교에서 애들 가르치면서 돈을 벌러" 강원도로 올라갈 때 카메라 달린 노트북을 가져가버린 후로 매우 답답해 하신다. 나는 별로 안 불편한데 주변 사람들이 많이 불편해한다. 다른 애들이 나한테 연락을 해야 할 때 같이 사는 애들 핸드폰으로 계속 전화를 하니까 애들한테도 미안하다. 다음 학기를 핸드폰 없이 나는 건 어떨지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엄마가 많이 답답하실 것 같아서 있는게 낫겠다. 그런데 폰 없던 생활이 나름 익숙해져서 핸드폰 생겨도 두고 다닐지도?
오늘 일하다가 갑자기 초밥 아니면 인도 커리가 먹고 싶어서 Phil이랑 세인트루이스의 괜찮은 초밥집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지만 결국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서 진환이가 물을 실수로 너무 많이 넣고 끓인 닭도리탕을 저녁으로 먹었다. 과자를 얌얌하며 음악을 들으니 신선이 따로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