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의 돛단배

함께 무덤을 파던 날 우리는 사랑에 눈이 멀고











너무 많은 것들이 상관 없어지는 날이 오게 되면 어떡하나, 고민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 같은데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상관 없어져 버렸고 나는 그게 너무 이상하지만,


아무렴 상관이 없다. 같은 이름을 불러도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상해 기분도 덩달아 이상해지던 적이 있는데 그마저도 더는... 아 그래 생각났어, 상관이 없지만 그렇지만 난 어디야, 어디 쯤이야? 목숨이 걸린 것처럼 물어오는 사람은 대충 책 덮어두고 정말이지 너란 사람은 나랑 아무런 약속도 안 해도 돼서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좀 구차해지기도 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나 싶어서? 적막을 배경처럼 깔아두고 기어코 그런 생각 둥그렇게 주먹 쥐어서?


하지만 방금의 이것은 내가 머리를 겨우 치약 쥐어짜서 나온 외마디이고 나는 정말


상관이 없다. 최근 몇 달 간의 나의 삶은 지난 시간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하고, 매일매일이 나에게 꽃다발을 안긴다. 로그 페이즈에 감사하느라 한아름 분주해진 나는 원래부터 관심 없던 내가 빠진 서사에 더욱 맹렬히 관심이 없어지고, 나의 그런 다소 자폐적인 무관심이 그래도, 남의 서사에 자신을 쉽게 치환시켜 넣는("네 육하원칙은 대체 왜 이래, 그보다 이건 어째서 내 서사가 아니야?") 태도보다는 훨씬 무해하다 생각한다. 놀랍게도 그게 안 되는 사람이 세상엔 참 많았다.


나는 분명 모두의 행복을 빌고 있지만 내 행복을 단단하게 만드는 일 또한 중요하고 남의 불행으로 인해 나의 행복이 솟아나지 않을 것을, 그리고 남의 행복으로 인해 내 행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을 믿는다. 나에게 행복이란 마치 진공포장된 기도처럼 개인적인 것이지만 어쩌면 내 질투의 부재가 진흙탕의 이치에 어긋나는 걸지도 모른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결국 나의 결여가 되겠지.


아무렴, 꼭 그래야겠다면 그래 그럼 결여가 되렴. 그래도 상관이 없어.


내 행복은 세상에서 제일 무해하고 불활성인 독단이야. 당신의 것도 그러길 빌어.


상관이 있는 것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가령, 속이 꽉 차서 길게 타는 친구의 담배를 기다리느라 오래 이슬 맞아버린 젖은 손, 이건 정말 비밀이라며 입술에 갖다대는 손가락이나, 정신 못 차리는 나를 비틀비틀 잡아끄는 손아귀 같은 것들.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눈꺼풀 아래가 뜨거워지고, 두통이 몰려온다. 편두통이 하루 이상 지속되는 날은 자고 일어나보면 해일이 나를 휩쓸고 간 것 같다. 밤새 부서진 정신을 모아 안고 꾸역꾸역 일을 한다. 왜냐하면, 지금은 더없이 풍족하니까. 금요일 저녁 늦게 일을 하나 더 벌리려는 것을 옆에서 뜯어 말려준 덕택에 나는 떠들썩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비좁은 테이블에 앉아 피자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그거 알아?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 그래서 이렇게 된 걸까?


드디어 행복해져서 상관이 없어졌나봐?


그때 우리 둘 다 말은 안 했어도 둘 중 하나는 다칠 거라는 걸 불가피하게 알았고, 그게 나라는 것도, 젖은 손가락을 서로의 비틀거리는 입술에 어쩔 수 없이 갖다대며, 우리 둘 다 알았다. 



+ men i trust - humming 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