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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 am writing this because people I loved have died."



-- From My Michael by Amos Oz











추웠다가 더웠다가, 비가 오고 다시 추워졌다가 해가 나오고, 너무 많은 일이 남몰래 있었다. 주어를 헷갈려하는 사람에게 조금의 짜증을 내는 사이 올해도 어김없이 동지에 터치다운 했다. 내려가는 해를 보며 슬리퍼를 끌고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는 나처럼 막판에 연말 선물 사려는 사람들로, 그러나 주중이라, 꽤 고요히 분주했다. 집 거실에 꿇어 앉아 가게에서 사온 것들을 포장하는데, 이웃이 잠깐 핸드폰 좀 빌리자며 발코니 유리문을 쿵쿵 두드렸다. 그는 몇 주 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불렀고, 잡담 도중 아랫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알려주었다. 그 집이 비게 된 것은 인부들이 블라인드를 젖힌 채 내부공사를 하는 바람에, 대충 알고는 있었다. 그렇지만 이사 가신 걸로 생각했는데,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웃은 고개를 젓고는 그냥 죽었지, 하며 들고 있던 캔맥주을 마셨다. 혼자 살던 그 할아버지는 알로에를 많이 키웠다. 거동이 불편한지 알로에 관리를 전혀 못해, 보다 못한 옆집 이웃이 직접 나서 대신 분화해 줄 정도였다. 그렇게 생긴 스무 개 가량의 알로에 화분 중 하나를 나도 받았다. 그럼 이 많은 알로에는 어떻게 되는 거지? 연락이 안 되는 걸 이상하게 여긴 가족들이 찾아와 문을 따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사실 나는 그 생각부터 했다. 발코니 문을 닫고, 선물 포장을 마저 했다. 거실에는 예전에 만나던 사람이 준 꽃다발이 바싹 마른 채로 책꽂이에 걸려 있는데, 그것과 병에 꽂힌 다른 말린 꽃들을 본 한 손님이 네 집은 무슨 꽃들을 위한 영안실 같은데,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곧 홈디포에 가서 살아있는 식물 두어 개를 사왔다. 영안실 타령 했던 사람은 내가 이번에 휴가 가 있는 동안 집에 한 번 들러 화분에 물을 주기로 했다. 꽃 안 피는 화분이 두 개, 꽃 피는 화분이 하나다. 최근 페이스북은 동문들의 흰 국화꽃 사진으로 가득했다. 수십 송이 꽃들을 지나치고 뉴스 가사를 읽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지인의 부고를 신문 기사나 뉴스로 먼저 접하는 것에 어느 정도 트라우마가 생겼는데, 이번 기사는 예전과는 달리 '연예'면에 등장한 것이 내심 속상했다. 그러나 누굴 탓하겠는가. 다방면으로 슬프고, 어쩔 수도 없다. 어제(그제?) 보러 간 아마도 올해의 마지막 영화에서는 시작부터 누가 죽었고, 동행인 중 하나는 자꾸 울었다. 나도 울고 싶었다. 최근 본 죽음을 다루는 영화 중 제일 좋았다. 그걸 올해의 마지막 영화로 남겨두고 싶어서, 올해의 남은 열흘 동안에는 영화 보지 않을 작정이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앉았다. 램프에 의지해 예전 일기를 필사하다가, 만약 나의 삶이 끝이 날 것을 직감해 이걸 누군가에게 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누구에게 가면 될지 알 것 같았다. 그 사람의 동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이만큼 살았으니까, 이제 그런 건 대충 안다. 그래, 대충 아는 것들이 너무 많고, 언젠가 이게 나를 망칠 것도 같고, 그러나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영문 모르는 네가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조용히 내파할 것이다.



+ elvis depressedly - thou shall not mur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