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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하염없는 걸 좋아하는 내게 당신은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을 꾸었니? 아니면 발이 너무 시린 꿈을 꾸었니?"하고 다정히 물었다."



-- 조연호 '농경시' 부분











친한 윗학년 친구 둘이 졸업을 했다. 둘 다 감사의 말 섹션에 나를 따로 싣고, 잊고 있던 사진으로 피피티를 도배했다. 교수와의 논의 끝에 졸업을 두 달 미룬 친구는 테네시 대신 메릴랜드에 직장을 잡았다. 은행이 있는 건물 옆을 걷다 마주쳐 얼싸 안았다.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떠나는 일은 오래 된 만큼 자연스럽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고, 그러나 그만큼 새롭게 가까운 사람들이 반드시 생긴다. 복도에 서서, 어두운 주차장 한가운데에 서서, 라디오 볼륨을 줄인 차 안에 앉아서, 바에 나란히 앉아서, 뒷뜰 가스등 둘레에 모여서, 자주 잡담을 한다. 얘기 도중 생각 없이 이름을 줄여 불렀더니 네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건 처음이네! 하고 누가 웃었다. 이름의 길이를 줄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나와 너의 거리를 줄이는 일이 된다는 걸 잊고 있었다.


핸드폰을 겨우 충전해서 전원을 켰다. 나 한국 가, 라고 문자가 와 있었다. 뒤늦게 답장을 했는데 아이메세지 대신 문자로 전송되는 걸 보니 이미 비행기를 탄 모양이었다. 놓쳤구나. 그럼 나는 짐 언제 싸지?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가며 생각했다.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실체적인 일 없이도 피곤하다니 우습지도 않게, 볼 안쪽이 정직하게 헐어서 기분이 나빴다. 잠이 연속적이지 못한지 오래 되었다. 매일 밤 적어도 한두 번은 깬다. 한 번 깼다 다시 잠들면 꼭 이상한 꿈을 꾼다. 너무나 이상하지만 너무나 말이 되는 그런 꿈들. 가끔은 꿈을 꾸던 중간에 (주로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깨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마치 등을 떠밀려 무대 위로 나온 사람처럼 황망한 기분으로 조금 전의 일을 마치 내게 실제로, 육체적으로 일어났던 일처럼 되새긴다. 꿈에서 일어난 일로 너를 원망해도 될까? 그건 얼마나 진짜였을까? 눈을 감고 신나게 걷고 뛰고 울고 웃다 눈을 뜨고는, 야간등을 스포트라이트처럼 받아내며 나 어쩌다 침대에 누워 있는지 되짚어본다. 혹시 나는 현상일까? 지나가고만 있을까? 그러나 현상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될 무렵이다. 내가 그 어떤 일을 해도 놀라지 않는 사람들이 소중하다. 너마저 상관이 없어지기도 한다. 나를 덮어두고 다시 잠에 든다.



+ woods - christmas time is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