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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So we preferred to let the centuries flow by as if they were minutes;"



-- From "At Daybreak" in The Complete Cosmicomics by Italo Calvino






Untitled (Perfect Lovers) by Félix González-Torres






손으로 일기를 쓰다가 노트를 덮고 여기에 쓴다. 최근 들어 예전보다 더 자주 손으로 일기를 썼다. 달려가는 마음 때문에 또박또박 적는 건 쉽지 않고 시간을 활자로 옮긴다고 해서 나의 당장이 길게 해결되는 것도 아니지만, 일기를 쓰는 행위보다도 지난 일기를 읽는 행위가 나에게 깊은 위안된다. 지난 날짜에 묻어 있는 지난 기분, 그들이 그렇게 책등에 묶여 있는 것만으로도 낱장의 스크린 속 텍스트와는 또 다른 단단한 위로다. 활자를 바탕으로 기억을 재연하다 보면 과거의 나를 훔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활자적 회고를 통해 나를 이해하고, 후회를 거두고 때때로 용서한다. 예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 이제는 자꾸만 가능해져. 몇 년 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영화가 이제야 이해되는 것처럼. 이게 나이 들어가는 건가 봐. 시간으로 범벅된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고 그런 이야기를 했다. 너에게까지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 그 말을 듣자 나 그래도 나름 잘 살아온 걸까 싶었다. 고마운 무게의 솔직함. 그것은 두꺼운 커튼을 허물고 유리처럼 속을 내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못한 말들 있지. 창틀 너머의 풍경을 알게 되면 네가 죽기라도 할까 봐. 당시에는 그게 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돌아가도 그럴 것이다. "내 마음을 의심해야겠다면 기억해줘 거짓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됐으면 난 네게 거짓말했을 거야" 때문에 우리는 사이에 장막을 두고 희고 파랗게 입을 맞췄네.


그러나 활자로도 기억나지 않는 일들이 있다.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불분명한 시간 때문에, 하지만 분명 괴로운 것이, 가끔 억울하다. 나의 예민함이 불씨다. 나의 예민을 섬세로 생각해 나를 사랑한 사람도 있고 나의 예민을 민감으로 여겨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게 된 사람도 있다. 나의 예민함을 눈치 채지 못하면서 나를 사랑한 사람도 있겠지. 나는 나의 이것 때문에 보통, 이렇다. 뭐라도 좀 찾다 보면 덜 괴로워질까 싶어 샅샅이 뒤진다. 무엇을 찾고 싶은 걸까. 모른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도 나를 뒤진 적 있는 걸 안다. 어느 밤에 나는 서랍처럼 누웠다. 생각지도 못한 이가 내 어깨의 점을 찾았다.



+ the british expeditionary force - where you go i will foll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