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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A sigh, and Earth continued to rotate back toward the sun."



-- From When Breath Becomes Air by Paul Kalanithi






from Claire's Knee (1970; dir. Éric Rohmer)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번 달 들어 아직 한 편도 보지 않은 건 알겠다.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면 불안하다. 나의 여기에 안주도 못 하면서 도망갈 기력도 없다는 걸 확인한다. 쉬고 있어도 쉰다는 기분이 없고, 보충제를 그렇게 먹는데도 입 안이 헐었다. 양치를 하다가 칫솔 머리로 상처를 긁어버려서 더 난장판이다. 구내염 연고를 어디다 뒀는지 찾을 수가 없다. 그냥 하던대로 양치를 하고 치실질을 하고 리스테린으로 입을 헹군다. 치과에서 권유한 리스테린에는 알콜이 빠져있다. 양치 이후보다는 양치 이전에 치실을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글을 읽었다. 어, 그럼 양치와 치실질 순서를 바꿔야겠네. 하지만 내일의 나는 그걸 잊고 또 칫솔모에 치약부터 짜겠지. 이런 사소한 일들. 오피스 책상 위에 겹겹으로 쌓여 있는 포스트잇 같이. 얼마 전 오피스 자리를 보다 조용한 구석 창가자리로 옮겼고, 며칠 뒤 일본에서 새로 온 포닥이 오피스 문 근처 내 원래 자리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과 같은 실험실 학생이에요,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자 그는 너무나도 공손한 태도로 내 손을 잡으며 방긋 웃었다. 그 사람은 내가 거기에 앉았던 걸 모르겠지. 바람에 요동치는 블라인드를 본다. 창문 뒤에 밤이 있다. 요새 자칫 쏟아지기 직전이다. 종종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가 보고 싶은지는 모르겠다. 다음 주 일정을 묻는 메세지를 쓰다 지웠다. 몰라도 될 것 같다. 더는 골치 아프기 싫다. 재미만 있었으면, 한다. 끝끝내 경사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누구나와 아무 것도 하고 싶다. 거짓말을 할 일이 생긴다. 상관이 없어진다.




+ adolescent - golden halls, pt.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