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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and the season is always next month, a pure but troubled time."



-- From Composition by John Ashbery






from Persona (1966; dir. Ingmar Bergman)






자동차 보험을 갱신하려고 했는데 보험료가 예상외로 꽤 올랐길래 문의해보니, 최근 이 지역 차 사고가 급증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민하다가, 친구가 들어있는 보험이 커버리지는 더 좋으면서도 가격은 더 싸길래 보험 회사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보험 갱신 안 하려고요, 이미 다른 회사에 싸인을 한 뒤 예전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그렇게 얘기했더니, 좀 더 포지션이 높은 듯한 담당자가 전화를 연결 받아 보험 내역을 다시 훑어보자고 수려하게 나를 설득했다. 우리와 함께 하신지 2년이면, 꽤 오래인데요? 그렇게 오래도 아니다. 괜찮다고 세 번을 말해야했다. 혹 마음이 바뀌면 꼭 다시 저희를 찾아달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얼마 전까지 분명 스웨터를 입고 다녔던 것 같은데 벌써 덥고, 반팔에 가디건만 걸쳐도 더움에 가깝게 따뜻하다. 봄을 건너뛴 채 이미 여름으로 와버린 것 같다. 시간이 지나가는 건 숫자 적힌 달력보다도 이렇게 새로운 보험 서류를 받아든다던지, 머리를 감다가 샴푸를 새로 사와야겠다고 생각한다던지, 세탁기를 또 돌려야 한다던지, 너무 많이 자란 바질의 윗부분을 솎아낸다던지, 목걸이의 녹이 늘어간다던지, 그런 부분에서 더 확실히 느낀다. 피부에 닿는 것은 무시하기 어렵다. 지난 가을 친구와 근처의 섬에 놀러 갔다가 산 고래 팬던트 목걸이는 줄이 너무 싸구려인 탓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녹이 슬어 피부가 아팠다. 벗어버리고, 다운타운 행사에 갔다가 길에서 산 다른 얇은 목걸이로 대체했다. 그걸 본 남자친구는 내 고래 목걸이, 예전 남자친구가 나에게 준 거 아니었냐고 물었다. 왠지 그 혼자 착각하고 있었다. 별개의 문제로, 다음 날 나는 그에게 더는 못 만나겠다고 말했다. 대화를 희석시켜야하는 사람과는 나의 너무 많은 부분이 힘이 들었다. 하나도 슬프지가 않아서 조금 슬펐다.


종종 재미가 없고, 그럴 때마다 내 필름의 몇 프레임을 나도 모르게 잘라 먹은 기분이 들어서 그게 싫고 무섭다. 여전히 세상 많은 것들이 경이롭게 다가오고 나는 그게 감사하지만 어째서 어떤 것들은 시시한지 이해할 수 없다(아니에요 사실은 기쁩니다 기쁘고 기뻐요). 나의 어디가 잘못되지 않았기를 빈다. 아름답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매번 찬란하고 싶다. 따지고 보면 이 중에서 내가 제일 시시하다. 죄 지은 사람처럼 나는 자꾸만 뛴다.



+ brother mynor - julia roberts damages her floorboa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