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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Every day I woke up and my pillow was all blue."



-- From Odd Jobs: Watching by Michael Schulman











윤일이다. 일하면서 날짜를 적다가 윤일이구나, 혼잣말을 했더니 근처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던 이가 오늘은 년도를 안 적어도 4년 동안 괜찮겠네, 라고 추임새를 넣으며 웃었다. 웃을 만한 말은 아니었지만 따라 웃었다. 4년 전 이맘 때 입사한 친구가 대리를 달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 문자를 보냈다. 내 테두리 바깥 지식이 얕아서, 엄마에게 대리가 지닌 의미를 물었다. 좋은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승진이니 당연히 좋은 것임을 안다. 다만 나는 좋은 것을 갖기 위해 너무 막연한 시간을 그 어떤 기약 없이 허공에 부어야하는 곳에 있다. 초조하지는 않지만 내내 뿌옇다. 마침 오늘 조교수 인터뷰를 하러 온 사람은 현재 직장 이전 직장에서 4년 동안 테뉴어 트랙을 탔다고 했다. 결말 나지 않은 시간인 것이다. 한 시간 그의 강의를 듣고 두 시간 그와 이야기를 했다. 와중에 나란히 앉아 메모하며 토론하는 지경까지 갔는데 문득 바라본 손등이 건조하고 빨갰다. 낯익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난 윤일에 무엇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를 뒤졌다. 안전하니. 왜 여전하니. 달라진 점 하나도 없지만 똑같은 점도 하나 없다. 나는 자꾸만 무마하려다가 애꿎게 마모된다.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봄이 오기 전에 죽겠다는 모르는 사람의 유서를 읽었다. 살고 싶기 때문에 죽겠다는 문장을 읽으며 물을 삼켰다. 사울의 아들Son of Saul은 생존을 넘어선 삶의 의미를 집요하게 쫓았다. 의미란 이유와 달라서, 사울을 연기한 배우 뒷모습에 달라붙던 카메라처럼, 나 홀로 오로지 내 안으로 함몰해야만 가까스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조차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의미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가끔은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벅찬 삶이다. 얼마 전에는 친하지 않은 동기가 웬일로 시덥지 않은 문자를 보내오며 삶이 개 같아서 술을 마셨다고 했다. 나는 늦은 저녁을 먹다가 생각없이 왜 개 같애, 물었다. “왜 넌 아닌 것처럼 그래?” 그 날은 몇 시간 간격을 두고 하퍼 리와 움베르토 에코의 부고가 차례로 나온 날이었다. 이제 와서야, 그 애에게 나도 허공이었을까 싶다. 오래 없다가 생기는 것들은 월초의 기분처럼 생경하다. 오늘은 내가 지어낸 누군가의 생일이다.



+ swell - this song said yes. 5:48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