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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There is permanent music and temporary music."



-- From Time Is a Ghost by Alec Wilkinson






월초에 미네소타 본부로 가서 디펜스를 하고 돌아와 다음 주에 당장 포닥 생활을 시작하러 마이애미로 이사가는 대학원 5년차 친구의 앞날을 기원하러 모인 점심 식사 자리에서 대학원 동기가 대학원을 그만둔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난데없는 소식에 먹다 남은 감자튀김을 가운데에 두고 다들 당황한 시선을 교환했다. 다음 날 아침 내내 현미경에 붙어 있다가 동굴 같은 방에서 드디어 나와 동기가 대학원 사람들에게 돌린 전체 이메일을 읽었다. 전날 웨비나를 보느라 점심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던 동기 한국인 언니는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며 내게 메세지를 보냈다. 언니 저도 이유는 몰라요. 다른 대학원 친구도 얘 왜 떠나는 거야? 나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나에게 묻는 것보단 당사자에게 묻는 게 더 정확할 거야. 오피스로 내려갔더니 작년에 결혼한 같은 랩 친구가 임신 14주차라는 소식을 알려주었다.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놀랐다. 축하해주고 앉아서 이야기 나누는데, 이것저것 쓸데없이 참견하며 돌아다니는 다른 랩 사람 때문에 다른 친구가 심기 불편해했다. 괜히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 친구를 진정시켰다. 와중에, 이틀 안 보이던 같은 랩 한국인 언니가 자기 아파서 며칠 쉬었다고 카톡을 보냈다. 왠지 보스에게 병가를 알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그리고 내 생각은 맞았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는구나. 다시 현미경실로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점심 시간이기도 하고 해서 숨 좀 돌리려고 통조림 수프를 챙겨 들고 휴게실로 도망을 쳤다. 나와 연배가 비슷한 포닥 건너편에 앉아 수프를 먹다가 옷과 바닥에 수프를 왕창 쏟았다. 아이고 인생. 휴지로 바지를 벅벅 문지르며 그렇게 말했다. 정신이 없었다.


저녁 직전의 하늘에 많은 일이 일어나는 건 마음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째서인지 모른다.











친구와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의 전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친구는 알아들었다. 공존하는 게 최선이지, 하면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있구나 다시금 오해를 했다. 웬 덴마크산 노래를 들으며 아무도 없는 주차장을 걸었다. 노래 제목의 뜻은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가사를 알아들을 길 없었지만 아름다웠으면, 했다. 나는 원대함을 바란 적 없는데 내가 바란 것이 원대한 것이라면, 좀 초라해져버린다. 원대함이 고작 이런 것이었나 싶어서. 원대한 것 혹 가져봤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뭐였든 간에 지금 내게 없다는 건 알겠다. 나쁘지 않다. 이제는 없는 것이 그러나 없던 것은 아니게 되는 삶이다. 그 사실이 원망스럽다가도 자랑스럽다가도 나를 황홀케 한다. 이 문장은 예전에 어디에 적었다. 내가 나에게 새롭지 않아 나는 자꾸만 나를 재활용한다.



+ katrine stochholm - en dejlig aft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