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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Asked me how to say tree in Arabic. I didn't tell her. She was sad. I didn't understand."



-- From Sleeping Trees by Fady Joudah











약국에 가서 약을 찾고 나오려다 며칠 전 편두통약을 먹고 속이 구멍날 것처럼 아팠던 게 기억나, 대학 다닐 때 친구에게 한 번 얻어 먹어보곤 플라시보라 생각해 내가 돈 주고 이걸 구입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거라 생각했던 텀스를 한 통 사고, 오피스에 쟁여둔 껌이 오늘로 동이 난 게 생각나 껌도 두 통 사고, 토요일에 친구 집에 가져갈 와인도 한 병 샀다. 텀스는 각종 과일맛, 껌은 두 종류의 다른 민트, 와인은 만만한 컵케익 브랜드. 나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캐쉬어가 계산을 했다. 아이디 보여주세요, 하고 그가 변성기도 안 지난 목소리로 내게 물을 때 카운터 뒤에서 덩치 큰 아저씨가 나와 술 구입 코드를 찍어주었다. 얼마 전 잃어버려(도둑 맞아?) 새로 발급받은 카드를 긁었는데 칩 카드는 긁지 말고 여기 꽂으셔야 해요, 캐쉬어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와인은 품에 안고 다른 것들은 봉지에 담아 들고 약국을 나와 안개에 얼굴 맞았다. 집으로 가는 길이 침침했다. 정신이 없다. 우울할 정신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참지 않고 심술 부리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걸 귀여워해준다. 다들 고맙게도 미쳤군. 미안하고 피곤하다. 이미 2016년 하반기쯤 된 기분이다. 또 당장 연말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2015년 정리하는 글도 다 못 적었는데, 길지도 않은 글을. 정리할 여력 없이 끝이 너무 야단이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이미 끌어안았던 친구를 한 번 더 만나고, 같은 일본라면집에서 두 끼니를 연달아 해결하게 될 줄 몰랐던 거다. 사람 일 정말 모른다. 뭐라도 좀 잘 알았으면 좋겠다. 알아도 모른 척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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