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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t is better to live in a state of impermanence than in one of finality."



-- From The Poetics of Space by Gaston Bachelard











요즘은 악몽을 꾸면 주로 일에 관련된 내용이다. 꿈속에서 나는 작업을 망치거나 관계를 망치거나, 한다. 방금 전까지 계단을 미친듯이 뛰어 다니거나 앞뒤 없이 화를 내고 뒤돌아서는 사람을 붙잡으며 난 이제 끝난 걸까, 절망하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이 나고 동향의 방은 환하고 나는 미동 없는 침대에 누워 미간을 구기며 혼란해한다. 아예 토대부터 비현실적인 꿈이라면 재미라도 있을 텐데. 꿈의 영역에까지 일상의 결을 끌어오게 되면 곤란하다. 일상을 살면서도 이게 차라리 꿈이길, 빌게 되는 순간이 잦아지기 때문이다. 호기심에 반 년 정도 적어보았던 꿈일기를 자연스레 관둔 것 또한 그 때문일수도 있다. 놓아두면 줄줄 새어나가 애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지던 꿈을, 굳이 언어로 고체화시키는 일이 고단했다. 누구 좋자고. 쓰면 쓸수록 나만 괴롭고, 피곤하잖아. 그냥 귀찮았던 부분도 있지만. 이렇게, 게으름을 인정하면 편해져버린다. 나는 요새 게으르다. 연휴는 진작에 끝났지만 몸에 게으름이 남아 있어 자꾸만 편하고 싶다. 속상한 꿈을 꿔도 좋으니 조금만 더 눕자 조금만 더 자자, 하게 된다. 마침 달력도 끝무렵이다. 12월이다. 춥지 않다. 속고 있다. 속이고 있다. 속아지지 않는다. 나를 추위에 떨게 두질 않는다. 여름에서 멀어지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 가끔, 언어를 넘나들듯 생활을 나 좋을대로 의역하는 버릇 때문에 내가 삶을 이나마 유지한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순간을 오리고 붙이고 편집하며 결국 소중히 끌어안는 건 생활과 삶 사이의 이안류離岸流에 지지 않으려는 발버둥과 같다. 이러면 혹 떠내려가긴 해도 가라앉지는 않겠지, 하면서. 사실 나는 나의 밀도를 모른다. 알았던 적이 없다.




+ the greatest hoax - opus no.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