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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 조연호 '배교' 부분






한 시간을 덤으로 받은 밤에는 너무 많이 울었다. 쓸데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유 없진 않았다. 자고 일어나니 피곤했다(는 문장은 쓰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덜 울었는지 머리가 아팠다. 힘든가. 힘들지만. 그만큼 힘든가. 정말 많이 힘들던 때에는 힘 빼세요, 하는 요가 강사의 말에도 요가 매트 위에 울컥 눈물 쏟았다. 지금도 그만큼인가. 모르겠다. 생각하지 않겠다. 하지만 남들도 다 힘드니까,라는 말은 싫다. 남들이 힘든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지도 않고, 남들이 안 힘들다고 해서 내가 더 힘든 것도 아니다. 내가 힘든 건 그냥 내가 힘든 것, 그 뿐이다. 힘든 것이 몸에 나타나면 안 된다고, 아프지 말라고. 거울 보듯 말해오는 사람에게는 건강하고 길게 살 거라고 답한다. 왜냐하면 나는 결국에는 건강하고 길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 건 그냥 알 수 있다. 천재들이 자신의 요절을 직감하는 것처럼. 천재가 아니라 아주 다행이다. 여튼 건강하게,는 모르겠지만 길게 살고 있다. 이번 주 내내 이른 아침 출근했다. 하루가 내 필요보다 길어지고, 그것이 예상보다 마음에 든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원래 종종 생긴다. 살다보니 해저에서 보내오는 편지도 받아보는 것처럼. 잊고 있었는데, 오늘 주차를 하다가 갑자기 기억이 났다. 편지의 끝에 이제는 평행주차 잘해? 같은 말이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 없음에 조금 웃었다. 그 문장이 마치 나를 잘 아는 것처럼 굴길래. 파도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하나인 바다에 관한 짧은 편지를 받은 적 있다. 당시 머물고 있던 호텔 침대에 걸터앉아, 며칠 늦게 찾은 그 짧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었다.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아주 다른 두 가지이지Knowing and understanding are two very different things. 그런 혼잣말을 하면서. 당시 나는 해안가를 떠난지 너무 오래 되어서, 고작 그 세 줄에도 내 방이 심해 같았고 마음은 천장 근처를 떠다녔다. 그런 날은 이제 오지 않겠지. 눈 내리는 현관에서 불 꺼진 편지를 두 손으로 붙들었던 더욱 어렸던 날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그때의 모든 나는 넘겨진 페이지의 활자처럼 제자리이지만 각자 생생히 이야기를 품고 살아있다. 지금의 나는 자꾸만 먼지를 한 겹씩 입어간다. 다들, 벌써, 매우 먼 일 같다. 그리워하고 두려워하고 그러나 울지는 않으면서 나는 책장의 끝에 켜켜이 있다.  



+ au revoir simone - stay gol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