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간의 돛단배

"Idle youth, enslaved to everything; by being too sensitive I have wasted my life."



-- From Song of the Highest Tower by Arthur Rimbaud






당시에는 세 개의 다른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고보니 그냥 비선형 구조의 내러티브를 지닌 하나의 영화였다.


며칠 사이 한강을 여러 번 건너다가 서울에는 참 다리가 많구나, 생각했다. 대학동문회 후에 뒷풀이를 가려고 친구가 모는 차를 타고 반포대교를 건너면서, 술자리가 파한 뒤 다시 친구의 차를 얻어타고 잠수교를 통해 이태원으로 돌아가면서, 택시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자꾸만 한강 위를 지나면서 다리 건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다리가 왜 좋은지, 다리를 건너는 게 왜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그게 너무 좋아. 여기서 저기로 건너갈 수 있다는 게… 원래도 좋아했지만 요즘은 더욱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해.


눈에 띄는 못생긴 건물마다 족족 코멘트를 하는(“What is this ugly piece of shit?”) 친구와 걷다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다.


나 요즘에 Bachelard바슐라르의 The Poetics of Space공간의 시학 읽고 있다고 했잖아, 아직 두 챕터 밖에 안 읽었지만. 그거, 가족여행 갔을 때 들고 갔는데, 잠 안 올 때 읽으려고. 탁자 위에 뒀더니 엄마가 제목만 보고는, 휴가 와서까지 과학책 읽니? 하는 거야. 우주에 관한 책인 줄 알고. 바슐라르가 철학을 독학하기 전에는 물리 화학을 전공했다던데, 저자 정보에까지 그렇게 적혀 있으니 그걸 본 엄마는 그렇게 생각한 거지. 과학책이 아니어도, 아니 오히려 더, 휴가 때 여가용으로 읽으려고 들고가기에는 좀 두꺼운 내용의 책이지만. 어쨌든… 그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오잖아, 너도 대충 읽어봤다니 알겠지만. ‘집’이라는 건 결국 나와 외부를 분리시켜주는 테두리이고, 집이라는 외곽 덕에 ‘나’와 ‘나의 공간’이 뚜렷해지고. 그런 걸 생각하다보면 결국에 건물이든 구조물이든, 그것들은 내 윤곽을 정해주는 이름 같은 게 아닐까 해서…


그래, 네가 다리 건너는 일이 좋다고 한 거, 그게 네가 말하는 거랑 같은 거야. 같은 맥락이야. 다리를 놓으면 우리는 결국 지점 A와 지점 B를 정의내리게 되지. 원래 없던 지점이라고 하더라도, 생기는 거야. 그리고 그 지점들이 연결돼. 이어져. 그게 결국 다리를 놓는 행위니까…


그렇구나.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걸었다.


많이 걸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너무 많이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에 있어서 초연해지는 태도의 중요에 대해 이야기했다. 습득한 거야, 너도 알잖아, 나 원래 안 그랬잖아, 그런데 안 그러면 내가 너무 힘들더라고… 내가 손 쓸 수 없는 일이라면 마음도 쓰지 않겠다는 고백이었는데 그 애는 다 컸네, 하면서 내 등을 두드렸다.


너 때문에 썼던(used, wrote, both) 내 마음이 너무 많아 조금 우스운 오후이긴 했지만 그렇게 모든 걸 따지고 들다보면 세상엔 안 우스운 일 없게 되어버린다.


뒤집힐 것 같은 우산 하나를 나눠 들고 비 내리는 해운대를 걷고 나서, 밤거리에 택시를 우두커니 세워두고 서로를 포옹 속에 마주하고 나서, 서울역 승강장에 서 있다가 오른손을 오른손으로 무방비하게 잡히고 나서, 나는 잠깐 졸았다. 잠에서 깨어나 기차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치 방금 꾼 꿈을 기억하는 과정마냥, 한낮의 종로 근처 어딘가를 갑자기 떠올렸는데:


몇 미터 옆에서 튀어나와 내 팔을 움켜쥐던, 틱 있던 아이. 나를 마주하고 있지만 내 얼굴 뒤의 뭔가를 노려보던 아이의 눈과, 당황한 표정으로 지친 기색을 간신히 숨기던 보호자의 얼굴과, 핸드폰으로 지도를 확인하는데 골몰하던 그 애의 옆얼굴. 모두 한 공간에 있던 광경. 나는 물론 놀라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었고 보호자가 아이를 데리고 떠나고 그 애가 내게 괜찮냐고 물은 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쿵쿵 뛰는 심장 대신 얼얼해진 팔뚝을 만졌다. 그러는데, 마치 죽기 전의 사람이 쓸데없는 예전의 찰나를 추억하듯, 몇 년 전에 봤던 Beach House 공연의 마지막이 머릿속을 스쳤거든 정말 너무 불현듯.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을 데리고 갔던 그 공연에서 앵콜 직전 맨 앞줄 사람들의 손을 차례로 만져준 Victoria는 허공을 보며 대충 이렇게 말했지, 가끔 손을 뻗어 남을 만지는 일은 기분이 좋군요It feels good sometimes to reach out and touch someone.


우리가 서로를 무작정 붙들어보는 일이 결국에는 나와 너를 확인하고자 함일까. 그런 아이 같은 궁금증이 들었다. 기분 좋은 일이지, 확인한다는 건. 굳이 다리를 놓아서 지점 A와 지점 B를 확인하는 것처럼. 더없는 아득함을 헤치는 기분이 들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가면서, 내가 모르는 다리들을 지나면서, 다리를 놓을 수도 없고 내가 어찌할 수도 없는 지점에 대해서 오래 생각했다. 다리를 놓을 수 없다니. 그러면 그건 결국 없는 지점이고 앞으로도 없을 지점이니까, 마음은 쓰지 않았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하루하루를 사진 찍듯 보내는 건 쉬웠고 나는 그런 스냅들 속에서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린 일들도 좀 하고 지금은 틀리지만 그때는 맞는 일도 좀 했는데 결국에는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모든 것을 일삼아야지, 나쁜 일처럼.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어디서 묻었는지도 모르겠는 멍을 잔뜩 묻히고도 땅을 딛고 서 있는 내 두 다리를 본다. 그렇게 나는 겨우 낙관한다.




+ soosh - for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