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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Unknowing I must soon unpetal."



-- From I Am Vertical by Sylvia Plath






차 정비소에서 에어컨 바람에 벌벌 떨며 커피를 마시다가, 보고 싶은 친구가 내 페이스북에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그냥 단어)을 남긴 걸 확인하고 오늘은 기분이 참 좋겠구나, 생각했는데 아침 내내 별로 좋지 않은 일만 있었다. 서두르지 말자. 허둥대지 말자. 길고 올곧게 집중하자. 나는 그렇게 자꾸 되새겨야만 차분해지는 사람이라서 억울하다. 그래도 남을 실망시키는 일은 싫다. 네 시간 정도 정신 없다가 점심 세미나에 겨우 시간 맞춰 갔는데, 평소 오지 않던 사람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워서 늘 남기만 하는 음식이 고작 2분 늦었다고 흔적도 없었다. 한 시간 넘게 정신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앉아 있다가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와 병원 직원 식당으로 갔다. 오피스 냉장고에 냉동 음식이 몇 개 있었지만 보상 심리에 진짜 음식을 먹고 싶어서 그랬다. 어떤 초밥이 나와 있나 구경하다가 그냥 직원에게 밥 위에 연어랑 아보카도를 썰어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밥과 나무젓가락을 들고 오피스로 돌아가서 먹을까 하다가 그냥 식당 구석 4인용 식탁에 앉았다. 어차피 밥 때가 지나서 사람도 몇 없었다. 나는 밥을 먹었다.


밥을 먹었다.


그냥 정말 밥만 먹었다. 식당에 혼자 왔고, 핸드폰은 오피스에 두고 왔고, 그래서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입에 넣고 씹어 삼키는 일 외의 다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늘 사람들과 수다를 떨며, 친구들과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밀린 이메일에 답장을 하며, 뉴스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티비쇼 클립을 보며 밥을 먹었는데 말그대로 그저 밥만 먹었다. 그렇게 순수히 밥만 먹는 행위만 한 건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싶을 정도로 낯설었고, 오랜만이었다. 사실 거의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으로 와글와글하던 머리를 조금 비우면서 한참 밥알을 씹다가 주변을 둘러보는데 기분이 좋아졌다(적어도 나아졌다). 그래 수고했다, 괜찮다, 싶었다. 좀 '잘 살아보자' 기분이었다. 심호흡하는 기분으로 이십 여분에 걸쳐 천천히 식사를 했다. 앞으로도 될 수 있으면 혼자 밥을 먹을 땐 밥 먹는 일에만 집중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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