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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We are cardboard boxes, you and I, stacked / nowhere near each other and humming / different tunes. ..."


-- From Staking a Claim by Erika Meitner











눈이 빠질 것 같던 일주일을 보내고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동안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고 술도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많이 운전하고 너무 많이 떠들고 너무 많이 못 잤다.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으며 꾸벅꾸벅 졸다가 머리맡에 책을 두고 깊게 잠들었다. 중간에 얼핏 깼다가, 내가 지금 할 일이 있는데도 퍼질러 자고 있나 하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확인하다가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네 시간 가까이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날이 덥고 환했다.


새벽 세 시까지 남아 있던 무리는 무리 지어 바다에 갔다. 몇몇은 스키니 디핑을 하겠다고 옷을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들었다. 나는 신발만 모래밭에 벗어두고 원피스는 그대로 입은채 나머지와 떠들썩하게 바다에 걸어 들어갔다. 아무리 정면을 보아도 수평선이 눈에 걸리지 않아서, 바다가 아닌 그저 심야의 한가운데에 진입하는 기분이었다. 온통 축축했고, 부둥켜 안은 것처럼 따뜻했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추운 기색에 몸을 떨었다. 파도 때문인지 입에서 짠맛이 났다. 칠흑 같은 공간에서도 내 손이 닿는 곳의 윤곽은 보이는 게 새삼 신기했다. 말없이 있다가 웃음이 났다. 왜 웃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어서 또 웃었다. 그냥, 웃겨서 그냥, 전부 다... 나 뭐 하나 싶어서.


옷에서 물을 쥐어 짜내면서 어둠을 더듬어 파도에 헝클어져 있던 신발을 찾아 들고 샤워기로 몸을 대충 헹구고 새벽 세 시보다 더 늦은 새벽에 잠들어서 얼마 못 자고 일어났다. 길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전날 밤 바다에 몸을 담궜어서인지 꿈에도 광활한 물이 나왔다. 꿈 일기를 쓰지 않은지 꽤 오래 되어서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해내기는 어렵지만 머릿속에서 휘발하지 않은 장면들만 요약해보자면:


일단 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아주 높은 절벽에서 그 아래의 바다, 혹은 호수로 뛰어내릴 요량이었다. 어떤 결연한 목표가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 한 줄로 서서 절벽 아래 파란 물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방송이 나왔다. 물 탱크가 터져서 수면이 빠르게 상승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저 아래의 물과 이 높은 곳의 내가 더 빠르게 가까워질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는데 왠지 교황님이 절벽 가장자리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찬미예수님, 교황님 그러나 난 일 년 넘게 냉담 중이에요, 지옥에 가면 어떡하죠. 다들 교황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나만 뒤돌아 망설이지도 않고 홀로 깃털처럼 낙하했다.


입수했는지 나의 낙하가 끝이 나긴 했는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여튼 오랜만에 내러티브가 선명한 꿈을 꾸니 - 잠이 짧았던 이유도 있겠지만 - 피곤해져서, 아점 먹자는 말에 에둘러 거절하고 가려던 친구들 집에도 두어 시간 늦게 갔다. 느긋하게 외출했다 돌아와서는 몸을 절반쯤 눕힌채 또 책을 읽고, 곤히 음악을 들었다. 활자에 걸신 들리기라도 했는지 신경이 바짝 곤두서서, 모든 가사가 필요 이상으로 또렷하게 들린다. "하지만 난 알아 난 더 행복해질테고 너도 그럴테고 결국엔 결국엔..."








+ tame impala - eventua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