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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mpossible, I realize, to enter another's solitude."




-- From The Invention of Solitude by Paul Auster






아이작이 죽었다. 룸메이트가 마트에서 사온 실란트로였는데, 룸메이트가 물을 너무 많이 주었는지 어쨌는지 줄기가 노랗게 시들시들해지더니 석 달을 못 넘기고 죽어버렸다. 어쩔 수 없군, 하며 룸메이트는 손바닥만한 실란트로 화분을 그대로 들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화분이 한순간에 쓰레기처럼 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내 난초도 꽃을 다 떨구었다. 마지막 꽃까지 떨어지고 나자 식탁 위에 자주색 꽃잎이 그림자처럼 쌓였다. 작년 연말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랩 동료가 병원 선물점에서 사다준 난초인데, 꽃이 다 지거들랑 줄기 가장 아랫마디 바로 위를 자른 다음 서늘한 곳에 두고 매주 물 주듯 똑같이 물을 주라고 친구가 일러준 게 기억이 나 망설이며 줄기를 잘랐다. 식물 다루는 법을 아직 잘 몰라서 꽃 피우던 것을 가위로 자르는 일은 조금 무서웠다. 잘라낸 길다란 난초 줄기는 창가에 두고 마른 뼈처럼 변할 때까지 잘 말렸다가 내 방문 장미 옆에 나란히 달았다. 장을 보러 갔다가 충동적으로 실란트로 화분을 하나 사와서 아이작이 있던 창가에 두었다. 이름을 지어주진 않았다. 그늘진 거실 구석으로 옮겨둔 난초는 줄기 잘린 부분에서 잎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행스러웠다. 어제는 퇴근하려는데 아빠가 문자를 보내왔다. 어버이날이라 그런지 할머니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 항상 잘해라. 마침 퇴근하려던 참이라 집에 도착하면 전화 드리려고 했어요, 했더니 아빠 당신은 이미 출근했으니 됐다고 하셨다. 어린이날처럼 어버이날도 휴일이라고 그만 착각했다. 집에 와서는 계란을 풀고 화분에서 실란트로를 뜯어 넣어 대충 부쳐 먹었다. 밤산책을 하면서 엄마와 통화를 했다. 부모가 부모를 그리워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 tennyson - in one pie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