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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 have no skin (except for caresses)."


-- From A Lover's Discourse by Roland Barthes











일기를 쓰거나 랩 노트를 작성하거나 파일명을 입력할 때, 2015년을 실수로라도 2014년이라고 적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걸 놀라워하면서 한 달을 훌쩍 보내버렸다. 원래 한 해의 첫 몇 주 동안은 곧잘 삐끗하며 연도를 틀리곤 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래도 올해의 나는 올해가 올해라는 것을 너무 자각하고 있다. 요새의 나는 달력을 거울보다도 자주 보기 때문이다. 나는 온전히 여기에 있는데 여기 앞과 뒤의 날짜들이 마치 나인 것처럼 굴고 있다. 아마도 입증하고 싶어한다.


어딘가로 너무 많이 나다닌다. 내내 빼곡한 허공을 헤엄치는 기분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며칠 사이에 페이스북 친구가 쉰 명 정도 더 생겼다. 나는 이 사람들 중 과연 몇 명의 생일을 챙겨주게 될까. 짐가방은 옷장에 도로 집어넣지도 않고 삼주 째 방문 옆에 두고 있다. 내 방과 방문은 그대로 있으니까. 떠나는 것들과 남는 것들을 구분한다. 나는 자꾸만 떠나니까 떠나는 사람의 마음은 대강 알겠다. 그래서 남겨지는 사람의 마음을 자꾸만 상상하게 된다. 무례하게도 실례를 무릅쓰고. 출근길 내 앞의 차주는 차 뒷창문에 "Cameron, 2001-2011"이라는 스티커를 붙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조금 울었을까. 도시 한복판에서 동생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애가 자기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친구가 나에게 일러주었다. 나도 그런 식으로는 아니더라도 남겨진 적 분명 많은 어째서 아무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거지.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었던 것만 기억난다. 그건 내가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온통 애썼기 때문이다. 왜 애썼을까.


이해하려고 한다. 이해해보려고 한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그 여자는 그에게 무턱대고 내 이름을 들먹이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만약 내가 거기 있었더라면 나를 때렸을까. 내 친구도 때렸을까. 우리는 그렇게 영문도 모른채 맞았을까. 내 친구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는 그 여자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 여자의 망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자기의 인생을 해치고 있을까. 우리가 얼마나 싫을까. 꼴도 보기 싫겠지. 다른 술집에서 친구와 왁자지껄 웃으며 있다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직후에는 한동안 황당함에 웃음 섞인 욕 밖에 나오질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내 상상에 함몰하듯 해 입었던 순간들이 생각나면서, 병든 남의 마음 - 설령 그 가시가 나를 향했다고 하더라고 - 을 이해하고 싶어질 수 밖에 없었다. 내 불행 그만 빌고 너 홀로 온전히 행복해라. 얼 것처럼 추운 새벽 익숙하지 않은 눈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차피 떠날 곳이라 너그러워진 건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다들 거덜난 마음이다. 나도 아직도, 아마 죽을 때까지, 내 마음에 곧잘 산불 내곤 한다. 숨기는 것 하나 없이 자꾸 들키는 것만 같아 오랜 시간 얼마나 억울했는지. 이제는 시들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여기서 더는 마음 거덜나지 않기를. 습관처럼 무서운 2월이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부디 무탈을 빈다.



+ mice parade - guitars for pla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