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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올해 1월 31일 일기의 마지막 문장은 "나는 서서히 정전이 되어간다"였고,


임시로 저장되어있던 일기 세 개를 지웠다. 다시 읽어보아도 더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쓰고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상관없어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다. 한 번만 안아도 될 것을 두 번 안아 후회한다. 내가 그런 삶을 골랐다. 나의 불행이 온전히 나의 몫이라 불행하다.


정전을 상상하기 직전에 "이 정도면 이 불행은 어떤 불행도 아니게 된다"라고 쓰던 내가 정확히 어떤 마음이었던 건지 어떤 정적을 이기려 애썼던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나는 지금 갑작스레 불행하다. 아픈 목과 어깨를 외롭게 주무르며 이슬 내린 학교 주차장을 걷던 새벽 그렇게 생각했다. 심포지엄 참석차 출장을 나갔다가 감기를 달고 돌아와 주말 내내 기침을 하고 코를 훌쩍이며 밀린 일을 한 직후였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미네소타에서 클로이 굉장히 행복해보인다, 요새 생활 좋나봐, 그런 말을 들었었는데(거기에 책망이 찐득하게 묻어있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귀찮고 무서워서) 며칠만에 곤두박질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처럼 나의 단면에 행복이 켜켜이 쌓여있는 거라면 그 충분함을 발판삼아 나의 돌출된 불행에 대해서는 덜 생각하자. 그래도 되지 않을까... 침대에 넘어지듯 엎드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나는 미팅 발표 자료 첫머리에 평소와는 달리 괜히 농담조의 사진을 넣었고, 교수님을 포함한 실험실 사람들이 유쾌하게 킬킬대는 걸 보며 불행에 대해 덜 생각했다. 물론 나의 불행은 그래도 그대로였지만. 이렇게, 외부의 것을 내부의 것으로 착각하는 짓을 일삼아서.


최근 나는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불행에 관한 몇 통의 전화를 받았고, 전화를 끊을 때마다 뜨거워진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조금 더 불행해졌다. 행복을 나누면 배가 되듯 불행 또한 나누면 배가 되기도 해서이다. 두 달 가까이 사람들을 딱히 만나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여건만 된다면 지금 사는 동네를 당장 벗어나고 싶다는 사람도, 학교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불행을 차마 열거해보이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불행은 빌지 않아도 오는데 행복은 빌어야만 온다니. 야속하지만 나는 그렇게 빌어서라도 불러낼 수 있는 것이 우리들의 행복이라면 기어코 전력을 다해 행복을 빌 것을 다짐했다. 우리는 불행해도 행복할 것이다, 불행히도




+ nils frahm -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