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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this is fact not fiction for the first time in years,"


애틀란타에 다녀왔다. 비행기 경유가 잦은 곳이고 올 3월에 차를 몰고 이사를 할 때 하루 머물기도 했지만 도심 안을 본격적으로 돌아다녀본 건 처음이었다. 옷을 옛날 신사숙녀처럼 입은 사람이 많았다. 복숭아를 먹어야겠다 생각만 하고 먹진 않았다. 이상한 시간에 잠들고 이상한 시간에 일어났다. 나는 대체로 모든 공원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수족관이었더라면 난 그 크고 푸른 유리 앞에 몇 시간이고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바쁘지 않은 주가 없듯 지난 주도 참 바빠서, 애틀란타로 가려고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한 금요일 빼고는 매일 매우 늦게 퇴근했다. 와중에 하루는 일하다가 전해들은 사소한 말 한마디에 내가 지난 몇 개월간 염려했던 모든 것들의 단면을 봐버린 기분이 들어서 쓸데없이 펑펑 울다 잠이 들었고 그날 밤 꾼 꿈에는 같이 일하는 고마운 사람들 몇 명이 마치 위로처럼 차례로 등장했다. 다음 날 내 얼굴이 엉망이었던지, 일하면서 힐끔힐끔 나를 훔쳐보던 포닥 친구는 "혹시 이가 네 간을 지나갔니did a louse run across your liver?"라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기분이 안 좋냐는 독일어 표현을 직역한 거라고 했다.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좀 피곤하다고 했다(그게 아니라 사실 난 당장의 위로가 되지 않으면 포옹이라 생각했던 것을 나도 모르게 괴로움에 내팽개치는 습관이 있어).


그렇게 울다 잠들기 전날 밤에는 자려고 자리에 누웠다가 친구와 메신저로 뜬금없이 야하고 웃긴 대화를 나누면서 피식피식 웃었다. 나 이제 잘 거라고 말하고 핸드폰으로 알람을 맞추다가 문득, 나는 얘가 그 어떤 짓을 저질러도 얘를 경멸할 자신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 살면서 물론 몇 있었겠지만 이번의 기분은 굉장히 구체적이고, 순간이었지만 확실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호흡하듯 경멸할 수도 있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결국에는 다른 차원의 내가 되는 것이었다. 조금 무서웠고, 당황스러웠고, 부러웠다. 그들은 과연 어떤 경로로 내 객관을 손에 쥔 듯 흔드는 걸까. 알 수 없었다. 눈을 감고 손톱을 깨물다가 잠이 들었다.



+ death cab for cutie - a lack of col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