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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돛단배

"i close my eyes and spiral away from all i've done and seen,"


오늘 점심 즈음 잠에서 깨 침대에 누워서 오늘이 일요일인가, 혼란해했는데 멀리서 먹구름이 몰려오니 오늘 말고 내일 바다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그렇다면 오늘은 과연 토요일이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종일 일이 너무 많아 총체적으로 정신이 없었는데, 늦은 낮 일을 대충 다 끝내고 한숨 쉬면서 커피 텀블러를 물에 씻고는 물기를 닦은 젖은 페이퍼 타올 대신 깨끗해진 텀블러를 휴지통에 던져넣음으로써 정신없음의 정점을 찍고 말았다. 몸을 숙이고 휴지통에 팔을 집어 넣어 텀블러를 건져내면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퇴근하고 나서는 학교 이벤트의 일환으로 사람들과 함께 강에서 두 시간 정도 보트를 탔다. 그러면 기분이 느슨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보트에 타자마자 이상할 정도로 갈증이 치밀어서 물 두 병을 연달아 마셨고 나는 혹시 내가 어디 아픈가 싶어서 신경이 곤두서고 말았다(다소의 건강염려증hypochondriac이다).


강 건너의 다운타운을 마주하고 있어서 전망이 좋은 식당에서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학교 돈으로 저녁을 먹고 내 돈으로 술을 마셨다. 나는 최근 들어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술이 꽤 약해져서 한 잔 정도면 딱 알맞게, 두 잔 정도면 조금 많이 취할 정도로 가성비가 좋아졌기 때문에 예전보다 적게 마시고도 기분이 좋았다. 뒷풀이 겸 바닷가로 넘어가서 술을 마시고 노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져서, 친구가 모는 밴을 타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중간에 학교에 들렀으면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기 때문에 나도 그 참에 실험실에 올라가 실험 하나를 얼른 돌려두고 나올 작정으로 속으로 열심히 시간 계산을 하며 스마트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핸드폰 화면을 훔쳐본 애가 하하 클로이 좀 봐, nerd alert, 금요일 밤에 안티바디 데이터시트 들여다보고 있네, 라며 킬킬 웃었다.


새벽에 친구 차를 타고 학교 주차장으로 돌아가 외롭게 이슬을 뒤집어쓰고 있던 내 차를 찾았다. 더듬더듬 밤길을 운전해 아파트로 돌아왔는데 왠지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서 괜히 운전석에 앉아 듣던 노래를 마저 듣고 빈 우편함을 한 번 더 체크하고 조용한 아파트 주차장을 서성이는 등의 쓸모없는 짓을 하다가 내가 사는 건물 입구에서 세차게 돌아가던 스프링클러에게 결국 뺨을 맞고 말았다. 얼굴에서 물이 뚝뚝 흘렀다. 그러고보니 나 또한 살면서 남에게 뺨을 맞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찌 보면 참 헛산 거라고 누군가 썼던 것도


방은 너무 쉽게 엉망이 된다. 나는 사실 너를 똑바로 바라보며 '전혀'를 발음할 수도 있었겠지. 괴롭다고 생각될 때마다 하늘을 보면 나는 그게 끔찍하게도 위안이 되고, 여태까지 헛살았다면 앞으로는 조금 덜 헛사는 사람이 되기를 가지런한 소문자의 형태로 희망한다. 어떤 그림처럼 비틀거린다.






+ glass candy - rolling down the hills